자고 나면 1억원씩 오른다는 아파트 값 때문에 수많은 이의 억장이 무너졌다. 지방에선 3억이면 살 수 있는 아파트가 서울에선 그 열 배를 줘도 못 산다니 그런 집이 몰려 있는 동네에 사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좋을 수 없다.
9·13 부동산 대책의 적절성 여부를 두고 전문가도 아닌 필자가 세세하게 시비를 따질 생각은 없다. 다만 이번 조치로 향후 수년에 걸쳐 연간 수백만원에서 많으면 천만원 단위의 세금을 더 내게 될 이들의 항변을 처리하는 우리 사회의 방식을 보면서 '소수의 의견을 이런 식으로 대하는 게 정당한가' 우려하게 된다. 투기꾼들을 찾아내 그들이 더는 이 땅에 해악을 끼치지 못하게 조치하는 것은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아무리 그래도 한꺼번에 싸잡아 패는 방식이어선 곤란하지 않은가. 보유세 중과(重課) 대상 중엔 자기가 살던 동네에서 집 한 채 갖고 살다 보니 값이 오른 이들도 적지 않다. 월급쟁이라면 평가 재산만 늘었지 소득은 제자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월급 받아 세금 내는 사람 처지를 고려해 달라는 그들의 요구는 타당하다. 다주택자도 무조건 투기꾼 취급할 일이 아니다. 소유 기간에 따라 보유세를 차등 적용하고 장기 보유자가 전·월세 수요자에게 살 곳을 공급해 온 순(順)기능을 인정하라는 요구도 틀린 게 없다. 은퇴해 소득이 없는 고령자에게 과도한 보유세를 물리지 말라는 하소연은 절박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들은 사납고 가시 돋쳤다. "종부세 대상은 주택 보유자의 2%일 뿐이니 나머지 98%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라든가, "국민 대다수와 무관한 세금인데 무슨 세금 폭탄?"이란 반응은 적용 대상이 많으냐 적느냐만 따지는 이상한 논리다. 국민 대다수가 내지 않는 세금이면 어떻게 물려도 상관없다는 건가.
이 정부는 "매사 국민 뜻대로"라는 말을 자주 입에 올린다. 그러나 '국민의 뜻'이 '다수 맘대로'라는 의미는 아니다. 평등을 지향하는 민중민주주의라면 몰라도,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응당 소수자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이 정부는 특정 지역에서 비싼 집 가진 이를 몽땅 투기꾼 취급해 여론의 재판장에 던져 넣었다.
이런 경우를 예상했는지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은 명저(名著) '자유론'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다수자의 전제(專制)가 문제가 된다"고 갈파했다. 그는 "다수의 의지가 소수의 이익이나 행복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며 "여론의 형태로 나타나는 다수자의 전제는 배제되어야 한다"고 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알렉산더 해밀턴(1757~1804)도 다수 국민으로부터 소수자의 정당한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요체라고 봤다. 독립전쟁 시기 친영(親英) 논조로 식민지 미국인의 공분을 산 '뉴욕 가제티'에 일부 시민이 난입해 인쇄기를 부수자 많은 뉴욕 시민이 박수쳤지만, 해밀턴만은 "우리 이웃이 우리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비판하며 소수의 목소리를 지우는 것에 반대했다.
대상자가 소수여서 그랬는가. 정부는 세금 낼 사람들 의견은 듣지도 않고 '깜짝쇼' 하듯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니 다시 3일 만에 보완책이 나오는 것 아닌가. 정부는 대책 발표 후 제기된 여러 문제에 대한 추가 보완책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아무리 많은 국민이 아파트값 급등에 분노해도 울분을 풀어주는 방식의 정책은 지양해야 한다. 대중의 감성적 요구에 휘둘려 만든 정책은, 대상이 되는 소수자의 입을 부당하게 틀어막을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 사회에선 어제 다수에 속했던 사람이 내일 다른 이슈에선 소수가 돼 핍박당하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대한민국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수호하는 법과 제도를 만들고 발전시켜온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