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16일 대전 서구의 한 아파트 단지 내 횡단보도에서 40대 운전자가 몰던 승용차가 길을 건너던 다섯 살 여자아이와 어머니를 들이받았다. 아이 유치원 소풍을 준비하려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오던 길이었다. 소방관인 어머니는 꼬리뼈가 골절되는 중상을 입고도 딸에게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딸은 끝내 숨졌다.
지난 14일 대전지법은 이 사고를 낸 운전자에게 금고 1년 4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다섯 살 아이 사망에 대한 책임만 물은 것이다. 아이 어머니가 다친 부분에 대해선 처벌을 받지 않았다.
지난해 12월엔 70대 운전자가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 단지 경비실을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경비실 옆 인도(人道)에서 킥보드를 타던 여섯 살 여자아이가 다쳤다. 아이는 2주간 의식을 잃고 있다 깨어났다. 그러나 이 운전자도 아무 처벌을 받지 않았다.
이렇게 된 것은 우리 법의 취지가 일반 도로와 아파트 단지 내 도로에서 벌어진 자동차 사고를 달리 보기 때문이다. 현행 교통사고처리특례법(교특법)은 교통사고로 사람이 다치더라도 운전자가 종합보험에 가입했다면 형사처벌을 면제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보험에 가입했더라도 음주운전·뺑소니·횡단보도·인도 침범 사고 등 12대 중(重)과실은 처벌 대상이다. 12대 중과실로 인한 사고가 아니더라도 사람이 사망하거나 식물인간이 되는 등 심하게 다친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파트 단지 내 횡단보도나 인도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인한 단순 부상 사고는 처벌 대상이 아니다. 일반 도로의 횡단보도와 달리 횡단보도나 인도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로교통법에 따라 구청이나 경찰에서 설치한 게 아니라 아파트에서 자율적으로 설치한 것이란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교특법 원칙대로 운전자가 종합보험에 가입돼 있으면 아파트 단지 내 횡단보도나 인도에서의 부상 사고는 면책되는 것이다. '대전 사고'와 '강서구 사고'에서 사람이 다쳤는데도 처벌받지 않은 건 그 때문이다. 다만 아파트 단지 내 사고라도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나 뺑소니 사고는 일반 도로와 마찬가지로 처벌 대상이다.
아파트 단지 내 사고는 한 해 25만건 이상이고, 피해자 상당수가 어린이들이다. 그러다 보니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아파트 단지 내 횡단보도 사고와 인도 침범 사고도 처벌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문철 변호사는 "법이 허술해 사고로 사람이 다쳐도 '보험 처리만 하면 된다'는 의식이 만연해 있다"며 "아파트 단지 내 사고도 엄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