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약국 한편에서 무료로 영어 공부방을 운영하는 김형국 약사.

# 경상남도 의령군 부림면 신반리. 이 작은 시골마을에는 특별한 약국이 있다. 낮에는 평범한 동네 약국이지만, 저녁이 되면 책가방을 멘 동네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드는 곳. 잠시 후 약국에 딸린 작은 방 안에서는 아이들의 영어 읊는 소리가 힘차게 들린다. 지난 2008년 겨울부터 동네 아이들의 도서관이자 공부방 역할을 톡톡히 해낸 이 약국은 수업료나 교재비 일절 없이 그저 공부에 대한 열정만 있으면 누구나 올 수 있다. 그간 이곳을 잠시라도 거쳐 간 학생만 무려 100명이 넘는다.

은밀한 영어 공부방을 꾸려온 주인공인 김형국(64) 약사는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나는 정신을 가지라는 뜻에서 '오뚝이 영어 공부방'이라고 이름 짓고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그는 "캐나다 이민생활에서 돌아와 조그만 시골 약국에서 근무하면서 가장 먼저 느낀 아쉬움은 '열악한 교육환경'이었다"며 "도시와 달리 변변한 학원 하나 없이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돼주고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키워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공부방을 열었다"고 밝혔다.

김 약사는 그동안 학교나 학원에선 볼 수 없는 새로운 학습법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단계별 학습법'이 대표적이다. 오뚝이 공부방은 나이·학년이 아닌 어휘량에 따라 1·2·3단계로 나눠 학습한다. ▲1단계(영어 동사 1000개) ▲2단계(중학교 과정 어휘) ▲3단계(수능형 어휘)다. 예컨대, 고교 1학년생이 중등 과정 단어까지 외우면 2단계, 중 1이 수능형 단어까지 외우면 3단계 학습을 하는 식이다. 단계별로 과제량도 다르다. 대개 1단계 아이들은 쉬운 문장 하나를 확실히 이해할 때까지 매일 20번씩 쓰고 읽는다. 반면, 2단계 아이들은 이와 더불어 기본시제·진행시제 등 기본 6시제를 응용해 쓰고 읽고, 3단계 아이들은 여기에 완료시제·완료진행시제 등 총 12제를 연습한다.

회화 수업도 독특하다. 오뚝이 공부방은 김 약사가 유학 시절부터 연구해 탄생한 '의성어식 공부법'으로 진행된다. 의성어식 공부법은 문장의 단어마다 악센트를 넣어서 복식호흡으로 소리 내는 학습으로, 학생들은 수업마다 마치 기합 소리를 내듯 영어 단어 하나하나 힘줘 읽는다. 그는 "의성어식 공부법이 몸에 배면 회화뿐 아니라 듣기에도 효과가 있다"며 "처음에는 친숙한 단어만 들리지만, 훈련을 거듭할수록 영어 소리를 정확히 듣고 그 뜻을 인지할 수 있게 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보다 더 강조하는 것이 있다. 바로 '오뚝이 정신'이다. 김 약사는 아이들의 영어 실력뿐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의지를 심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어디에 살든 좌절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일어서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아이들에게 키워주기 위해서다. 예컨대, 시험 성적이 형편없어도 꾸중 대신 '우리는 오뚝이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자'고 외치게 한다.

이런 그의 노력 덕분에 아이들은 대개 성적이나 인성 면에서 크게 달라졌다. 공부방을 찾는 아이들이 지역 고등학교에서 전교 10위권을 도맡아 했을 정도다. 성적을 절대 강조하지 않는다는 김 약사는 "오뚝이 공부방을 거쳐 간 아이들이 유명한 사람이 되려고 애쓰기보다는 유익한 사람으로, 남을 돕는 기쁨을 아는 인재로 성장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있다면 계속해서 가르치고 싶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