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트럼프 행정부 내 저항 세력의 일원'이라는 제목의 뉴욕타임스(NYT) 익명 칼럼이 트럼프 행정부와 백악관을 일대 혼돈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고위 관료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퇴진까지 거론했다'는 칼럼 내용의 민감성 때문에, 익명 기고자의 정체를 둘러싸고 백악관과 행정부 안팎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혼돈의 중심은 역시 칼럼에 분노한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는 보좌진에 기고자 색출을 지시하고, NYT엔 '국가 안보적 이유'까지 대며 저자 공개를 요구했다. 그는 "기고자가 정부 내 뿌리 깊은 '딥스테이트(deep state)' 인사일 수 있다"며 "NYT의 탐사(探査) 전문 기자들은 익명 기고자가 누군지 조사하라"고 트윗했다. 딥스테이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정부 내 숨은 반개혁적 기득권 세력을 지칭하는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백악관은 '미친 듯한 사냥(frantic hunt)'에 돌입한 상태다. 각료와 측근들을 상대로 거짓말탐지기 테스트를 하는 방안과 법적 책임이 따르는 '부인(否認) 진술서'를 제출하게 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이미 12명의 용의자 명단까지 작성했다고 뉴욕타임스는 6일 보도했다. 심지어 퍼스트레이디 멜라니아 트럼프까지 "요즘 뉴스는 익명의 소스가 얘기의 절반 이상"이라며 "칼럼 저자는 비겁한 행동으로 나라를 파괴하고 있다"는 성명을 냈다.

"난 절대 아니다" 공개 부인한 고위 관료들 - 익명으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난맥상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정부 고위 관료를 색출하라는 지시가 떨어진 가운데 고위 관료들이 너도나도‘난 기고자가 아니다’며 공개 부인하는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사진 속 인물들은 기고가 게재된 5일(현지 시각) 이후 기고자가 절대 아니라고 주장한 고위 관료들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칼럼 기고자로 찍히면 정치 생명에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펜스 부통령을 비롯해 거의 모든 장관급 각료가 앞다퉈 "나는 아니다"고 공개 부인하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충성 선언'을 이어가는 대소동을 벌이고 있다. 이날 트럼프 행정부의 거의 모든 장관급 각료들은 "비겁하다" "충성스럽지 못하다" "미국의 이익에 반(反)한다" 등 다양한 표현으로 자신이 NYT 칼럼과 무관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인도 방문 중에 NYT 칼럼 주장의 허위와 비겁함을 비난했다. 재무·법무·국토안보·농림·상무·교육·주택도시개발부 장관 등 거의 모든 각료가 취재 카메라 앞에서, 또는 이메일과 트위터로 경쟁적으로 자신은 아니라고 밝혔다.

워싱턴 정가와 언론에선 칼럼 문장을 꼼꼼하게 분석해 익명의 기고자가 누구인지 다양한 추측을 내놓고 있다. 특히 칼럼에서 최근 작고한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지칭하면서 사용한 'lodestar'란 단어에 주목하고 있다. '길잡이별' 또는 '북극성'을 의미하는 이 단어는 현대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 주변 인물들 중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유독 여러 차례 사용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칼럼에 쓰인 단어와 문장을 분석해 기고자를 추정하려는 시도는 근거가 있다. 그를 직접 접촉했던 NYT 여론면 에디터도 6일 "저자가 자기 목소리로 의견을 내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 정체를 숨기려고 (일부러) 글의 단어를 바꾼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며 "저자의 단어 선택이 정체를 드러낼 수도 있다"고 했다.

영국 BBC 방송은 이 칼럼의 문장 구조와 문장 길이를 집중 분석한 뒤 "펜스의 문장과 가장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NYT 칼럼의 한 문장당 평균 단어 수는 19.3단어였다. 1990년대까지 조사한 펜스의 연설문은 문장당 17.4~19.7 단어로 비교적 비슷했다. 트럼프 연설문은 문장당 30 단어가 넘었다. 또 칼럼의 문장은 수동태가 많이 쓰였다. 백악관에선 수동태 문장을 거의 쓰지 않는데, 펜스 부통령은 1990년대 라디오 방송을 할 때와 개인 연설에서도 수동태 문장을 적지 않게 쓴 것으로 나타났다.

펜스 부통령이 유력한 '용의자'로 거론되자 그의 공보국장은 즉각 트위터에 "부통령은 실명(實名) 기고한다. 비겁하게 허위적이고 비논리적인 글을 쓴 사람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며 "부통령실은 이런 아마추어 행동은 안 한다"고 반박했다.

가장 최근 공식 석상에서 'lodestar'를 언급한 인물은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었다. 그는 매케인의 장례식 추모사에서 'lodestar'라는 단어를 쓰면서 매케인을 기렸다. 이 때문에 장례식에 참석해 그 말을 들었던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 헌츠먼 러시아 대사와 이방카 트럼프 부부까지도 '혹시?'라며 주목을 받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