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사진) 청와대 민정수석이 2003년 저술했던 '형사법의 性(성)편향'을 전면개정했다. 지난 5일부터 시중에 판매되기 시작했고, 공식 발행은 오는 10일 이뤄진다. 조 수석은 이 책에서 "최근 '미투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면서 '비동의 간음죄' 신설 주장이 여러 언론에서 소개된 바 있으며 관련 법안도 연이어 제출됐다"며 "그러나 여성이 경험하는 모든 비동의적 성교를 범죄로 규정하자는 제안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비동의 간음죄는 폭행, 협박이나 유·무형의 압박이 없더라도 상대방이 거부 의사를 드러냈다면 성폭행으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폭행·협박·위력이 없는데도 형법 동원…가부장주의 산물"
조 수석은 비동의 간음죄 신설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며 오히려 여성 권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통상의 의사능력이 있는 성인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일체의 침해를 형법을 통해 막아야 하는가. 폭행, 협박, 위력 등이 사용된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와 그렇지 않은 침해는 구별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피해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무조건 형법이 동원돼야 한다는 것은 오히려 여성주의의 '적(敵)'인 가부장주의 관념의 산물일 수 있다.'

조 수석은 또 강제력이 없는데도 여성은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성교에 응한다는 논리는 여성의 의지와 능력을 폄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 수석은 "(폭행, 협박, 위력이 없다면) 여성은 성교를 거절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상황을 종료시킬 수 있다"며 미국 여성운동가 비비안 버거 교수가 쓴 글을 인용했다.
'여성은 과잉보호되어선 안 된다. 여성을 어떠한 종류의 압력에도 견뎌낼 수 없는 약하고 종속적인 존재로 포괄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 성적 자율성 등을 축하하기보다는 오히려 무효로 만들고 역전시키며, 값을 떨어지게 만든다.'

‘형사법의 성편향’, 조국 저

◇"국회 발의 법안, 현행법 체계 안 맞아…미성년자 성범죄가 더 가벼운 처벌"
그러면서 현재 국회에 발의된 법안은 현행법 체계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조 수석이 지적한 법안은 홍철호(자유한국당), 강창일(더불어민주당), 백혜련(더불어민주당) 의원 개정안이다. 이 세 법안은 (유사)강간죄, 강제추행죄에 대해 비동의 간음죄를 적용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고, 홍 의원은 3년 이상의 유기징역, 강 의원은 2년 이상의 유기징역, 백 의원은 10년 이하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범죄의 객체(피해자)가 미성년자, 심신미약자인 경우나 업무, 고용 등의 관계로 보호, 감독받는 사람일 경우 발생하는 위력·위계 성범죄에서 (가해자는) 5년 이하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따라서 '위계' 또는 '위력'도 없이 간음한 경우보다 가벼운 벌을 받게 된다. 비동의 간음죄가 입법화된 나라가 있지만, 이들 나라의 형법상 성폭력범죄 체계는 한국과 차이가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 "비동의 간음 신설시 , 과잉범죄화 우려 부작용도"
책에는 비동의 간음죄가 신설될 때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도 언급됐다. 조 수석은 "범죄 행위자의 처벌 여부가 전적으로 피해자 의사에 따라 좌우된다는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비판이 있다"며 "폭행, 협박, 위력은 없었지만 동의 없이 이뤄진 성교가 범죄로 처벌되는 것은 과잉범죄화의 폐해를 바로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했다. 예시로 "부부가 이혼 과정에서 서로 원수가 되는 일이 허다한 현실에서 비동의 간음죄는 투쟁의 도구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조 수석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자는 ‘노 민스 노(No Means No· 거부했는데도 성관계를 시도하면 강간)’ 명제의 취지를 수용하면서도, 이 명제를 형법에 명문화할 경우 예상되는 부작용을 없애야 한다"며 "교집합(交集合)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했다. 조 수석은 "강간죄의 폭행·협박의 요건을 완화하는 방식 등으로 처벌되지 않는 비동의적 성교의 범위를 줄일 수 있다"면서도 "폭행, 협박, 위력이 없는 비동의 간음은 ‘형사불법’이 아니라 ‘민사불법’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