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예쁘니까 시험지를 미리 보내준다."
지난해 11월 충남 예산의 한 공립고등학교 '지구과학' 교사 A(59)씨가 1학년 제자에게 이메일로 담당 과목 기말고사 시험지를 유출했다. 그는 또 다른 제자 3명에게는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 등의 부적절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예산경찰서는 시험지 유출(공무상 비밀누설) 등의 혐의로 A씨를 입건했다. 경찰조사에서 그는 "아이들을 사랑해서 그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기소되어 현재 재판을 받고 있지만, 학교에서는 그에게 최고수위 징계인 ‘파면’이 아니라 ‘해임’조치를 내렸다. 공무원이 파면 처분을 받게 되면 퇴직금과 공무원연금을 50%만 받지만, 해임에 그치면 퇴직금과 공무원연금을 모두 받을 수 있다.
◇시험지 유출교사, 최고징계 '파면처분'은 거의 없었다
최근 전국 각지 고교에서 시험지 유출 사건이 잇따르자 학부모들이 "학교를 더는 못 믿겠다"고 분노하고 있다.
'공교육'에 대한 신뢰를 뿌리째 뽑는 '시험지 유출'. 그런 비위를 저지른 교사들은 어떤 징계를 받았을까.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이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박찬대 의원(더불어민주당)실이 파악한 최근 5년간 고교 시험지 유출 사건 15건(교직원 유출 10건·학생이 유출 5건)을 분석했다.
시험지를 유출한 교직원이 최고 징계인 '파면'처분을 받은 것은 단 한 건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해임 3명, 정직 1명, 감봉 2명, 경고 1명, 징역 1명(스쿨폴리스라 징계 없이 형사처벌) 등이었다. 시험지를 유출했을 경우, 교사가 비교육자인 '스쿨폴리스'보다 더 약한 처벌을 받는 셈이다. 광주광역시에서 학부모 의뢰로 시험지를 유출한 행정실장 김모(58)씨는 현재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수사 중이라 징계 수위는 추후 결정된다.
사립학교법 제 54조에 따르면 경찰, 검찰 등 수사기관에서 비위를 조사 중일 때 의원면직(일반 퇴직)은 허용되지 않는다. 다만 조사가 끝나고 시험문제 유출·성적조작 등으로 학교재단이 파면·해임을 결정하거나 관련자가 금고형 이상의 형을 받을 경우 다시 학교 교원으로 임명될 수 없다. 뒤집어 말하면, ‘감봉 조치’를 받은 교사는 다른 학교에서 교단에 설 수 있는 것이다.
2015년 부산에서도 시험지 유출 사건이 있었다. 자율형 공립고 영어교사 B씨가 집에 시험지를 가져간 사이, 모친 C(56)씨가 이를 빼돌려 자신이 운영하는 학원 수강생에게 흘린 것이다. B씨는 "어머니가 시험 문제를 몰래 빼돌렸다"고 주장했다. 시험문항을 직접 유출한 모친은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풀려났다. 교사는 3개월 정직 처분을 받았다. 금품거래가 드러나지 않은 데다, 시험지 유출에 고의성이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서울교육청 관계자는 "문제가 벌어져도, 교육청은 중징계·경징계 두 가지 가운데서 하나를 일선학교에 ‘요구’할 권한밖에 없다"며 "교육청이 강력하게 중징계를 요구한다고 해도, 최종결정은 학교 자체적인 징계위원회에서 내리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파면’이 나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교육청 감사관은 "교사들의 징계는 학교에서 결정하다 보니, 온정적인 결정이 내려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고 징계수위인 ‘파면’을 남발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충남교육청 관계자는 "파면은 실형, 집행유예 등 ‘중대한 범죄’에 대한 조치"라며 "시험지 유출도 사안마다 잘못한 무게가 다르기 때문에 무조건 파면조치를 내릴 수도 없다"고 말했다.
10건의 교사 시험지 유출사건에서 파면 처분은 받은 경우는 지난해 서울 S외고 교사 황모(61)씨 뿐이었다. 황씨는 영어학원 원장 조모(32)씨에게 1학년 2학기 중간고사 시험 문제를 제공했다. 이 덕분에 조씨가 운영하던 학원은 인근에서 ‘족집게 학원’으로 이름을 날렸다. 학교 측은 고의적으로 시험지를 유출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 황씨에게 파면처분을 내렸다.
교육계 내부에서 시험지 유출 교사를 엄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솜방망이’ 처벌로는 교사들의 일탈을 제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강남 대치동 입시학원 원장은 "안 걸리면 돈 벌고, 걸려도 상관없다는 식이면 시험지 유출은 계속해서 벌어질 것"이라면서 "파면 같은 최고 수위의 징계가 아니라면, (시험지 유출 교사가)퇴직금·연금을 모두 받고 학원가로 진출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시험지 유출 학생은 대부분은 퇴학
시험지를 유출한 학생들은 어떤 징계를 받았을까. 초중등교육법에 따르면 학생 징계는 학교 내 봉사→사회봉사→특별교육이수 →정학→퇴학 순으로 징계수위가 올라간다. 디지털편집국이 분석한 5건의 학생 시험지 유출사건에서 퇴학 처분은 4건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출석정지(정학) 처분에 해당됐다.
지난 7월 서울의 자립형 사립고에서는 재학생 2명이 교사 연구실에 침입, 문학 시험지를 유출했다. ‘완전범죄’인줄 알았던 이들의 범행은 성적이 급격히 오른 점을 수상히 여긴 교사의 추궁으로 드러났다. 학생들은 "내신성적 압박에 못 이겨 그랬다"면서 선처를 호소했지만, 결국 퇴학당했다.
지난 7월 부산 특목고 학생 2명이 교사 연구실에서 시험지를 빼돌린 경우도 모두 퇴학이었다. 학생 입장에서는 퇴학처분을 받으면 학생부 중심의 수시모집 전형에서 매우 불리해진다. 이들은 상담과정에서 학생들은 상담 과정에서 대학 입시에 대한 압박감과 성적 스트레스를 호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교육청 관계자는 "교사에 비해 학생에 대한 징계수위가 가혹하다고 볼 수 있지만, 교사들에게 내려지는 해임·정직도 중징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시험지를 유출한 학생들이 스스로 학교를 등지는 경우도 많다. 서울지역 고교에 재직하는 일선교사 김모(58)씨는 "시험지를 유출한 학생에 대해서는 친구들과 학부모 여론이 차갑기 때문에 스스로 자퇴를 원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같은 사안에서 학생은 최고징계(퇴학)인데, 교사는 최고징계(파면)을 피해가는 이유에 대해서 그는 "아무래도 제 식구 감싸기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수십 년간 함께 일한 교사를 강하게 징계하는 사학(私學)은 별로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