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세대는 더 많은 걸 포기했다. 2남 3녀 중 둘째로 태어난 김명자(가명·58)씨는 중학교 때 수학시험만 보면 100점이었다. 대학 가고 싶었지만 못 갔다. 부모는 한 살 터울 오빠와 김씨를 둘 다 공부시킬 수 없다고 했다. 김씨는 여상 졸업 후 대기업 하도급업체에 들어갔다. 또래 회사원과 중매결혼해 외아들(27) 낳고 그만뒀다. 이후 김씨는 남편이 청소하고 기저귀 갈길 기대해본 적 없다. 수저도 남편이 들고 난 뒤 들었다. "그때는 다 그렇게 살았다"고 했다.

취재팀이 만난 20~30대 여성들은 그런 얘기를 질색했다. 천현숙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위 세대 여성들은 불평등을 경험해도 가부장제를 수용했지만, 젊은 세대는 다르다"고 했다. 미혼 회사원 강영진(가명·32)씨가 "엄마는 가족을 위해 모든 걸 희생했지만 나는 그렇게 못 산다"면서 "특히 해외여행 가는 삶은 절대 포기 못 한다"고 했다.

3일 경기도 안양시의 한 아파트 거실에서 김근칠(62·맨 오른쪽)·조명숙(61)씨 부부가 두 딸이 낳은 손주들을 돌보고 있다. 김씨 부부는“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손주들이‘아지(할아버지)’라고 외치며 품속에 안길 때 정말 행복하다”고 했다.

이들이 이기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이봉주 서울대 교수는 "지금 20~30대 여성들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학교 다니며 남자한테 져본 적이 없다"고 했다. "대학은 오빠만 가는 곳인 줄 알았다"는 김씨 세대와 달리, 지금은 남학생 열 명에 여섯 명이 대학 갈 때(65.3%) 여학생은 열 명에 일곱 명이 진학한다(72.7%). 전업주부보다 일하는 여자가 더 많다(여성 고용률 51%). 행정부 국가직 공무원 중 여성 비율이 지난해 처음으로 반을 넘겼다(50.2%). 지금 20~30대 여성들은 '딸이니까, 엄마니까 희생하라'는 말을 폭력으로 받아들인다.

취재팀이 심층 인터뷰한 50~60대 여성들은 "그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다만 애 낳는 건 때가 있는데 젊은 사람들이 갈수록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안 낳으니 답답하다"고 했다.

허명자(가명·57)씨는 석 달 전 결혼한 딸(32)이 "직장 동료가 애 안 낳고 살기로 했다"는 얘기를 부러운 듯이 하길래 가슴이 철렁했다. 최인숙(가명·61)씨는 서른 넘은 딸 친구가 딸에게 "나 임신했어. 이제 인생 끝이야"라고 펑펑 울며 전화해 속이 상했다. 곽희숙(가명·64)씨가 "나는 보증금도 없는 슬레이트 지붕 집에 살며 남매를 키웠는데, 그 애들은 지금 나한테 '새끼 낳으면 빨리 늙는다'며 아이를 안 낳겠다고 한다"고 했다.

딸 셋에 손주 여섯을 둔 노영숙(가명·64)씨는 5년째 '산모·신생아 도우미'로 일하고 있다. 지자체 예산을 받아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이제 막 몸을 푼 산모와 신생아를 돌봐주는 일이다. "아이 하나 100일까지 낳고 키우는 데만 400만~500만원이 든다"면서 "산후조리원이며 보육비·교육비 얘기를 들을 때마다 '이러니 어떻게 애를 낳나' 안쓰럽다"고 했다.

보육은 그들에게도 '당장의 현안'이었다. 자식들이 "애 낳으라"는 말을 버거워하듯, 이들은 "낳으면 키워줄 거냐"는 질문에 말이 막혔다. 맞벌이 가구 미취학 자녀 열 명 중 여섯 명이 할아버지·할머니 손에 자라는 현실에 대해 이들은 "나라가 언제까지 '할머니 보육'에 기댈 거냐"며 "할머니가 보육 인프라냐"고 했다. 세 살배기 첫 손주를 2년째 보고 있는 이은미(가명·60)씨가 "손목에 파스를 붙이고 살아서, 나머지 손주들은 도저히 못 봐줄 것 같다"고 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해 우리나라 '손목 터널 증후군' 환자 열 명에 여섯 명(62%)이 50~60대 여성이라고 집계했다. 최인숙씨는 "결혼 3년 차 아들에게 '나도 휴대폰으로 손주 자랑 좀 하고 싶다. 낳으면 키워주겠다'고 했더니 며느리가 덜컥 애를 가져 걱정이 태산"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