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랍고 달달하다. 객석에 자주 웃음 폭탄을 던져넣는 한국형 유머도 장착했다. 포근한 판타지 분위기로 관객을 끌어당기지만, 원작의 아우라는 그대로다.
베스트셀러 소설과 흥행 영화로 먼저 알려진 이야기 두 편이 라이브 무대로 옷을 갈아입고 관객과 만나고 있다. 서울 잠실 샤롯데시어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연출 김태형)'와 대학로 대명문화공장 무대에 오른 연극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연출 박소영)'이다. 좋은 원작이 재능 있는 우리 연출·배우들과 만나 빚어낸, 원작과는 또 다른 매력이 가득하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가장 먼저 떠오르게 하는 작품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주연한 1995년작 할리우드 영화. 떠돌이 사진가 로버트 킨케이드는 사진을 찍으러 간 아이오와에서 미군 남편을 따라 정착한 나폴리 여자 프란체스카(메릴 스트리프)를 만난다. 중년의 주름살을 드러낸 두 배우의 맨 얼굴 대신, 뮤지컬은 어른을 위한 동화 같은 장치들과 우아한 노래로 무대를 채운다. '더 헬멧' 등으로 주목받은 젊은 연출가 김태형은 능청스러우리만치 영리하다. 처음 저녁을 함께했던 두 사람이 악수만 하고 헤어질 때, 머뭇머뭇 뒤를 돌아보는 로버트의 머리 위로 밤하늘 가득히 별들이 올라오고, 두 사람이 노래하기 시작하면 노출을 길게 해 찍은 사진처럼 별들이 길게 궤적을 그리며 회전한다. 건조하게 묘사하면 감정이 안 살고, 아름답게만 그리면 불륜을 미화하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장면들을 동화처럼 끌어가는 솜씨가 일품이다. 무대 전체를 감싸듯 세워진 커다란 사각형 무대 장치는 로버트가 카메라 셔터를 누를 때마다 그 장면을 사진에 담듯 '찰칵'하며 반짝인다. 이웃집 여인 마지는 타이밍 적절한 농담으로 자칫 너무 진지해져 가는 분위기를 조율한다. 이런 요소들 덕분에 이 작품은 나이나 성별과 무관하게 편안히 즐길 수 있는 친화력을 갖게 됐다. 관록의 뮤지컬 배우 박은태와 차지연의 노래와 열연은 화룡점정이다.
2012년 국내 발간된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지난달 마지막 주에도 교보문고 외국 소설 베스트셀러 2위일 만큼 꾸준히 사랑받는 책. 단언컨대, 대학로 연극은 올해 2월에 개봉했던 이 소설 원작의 일본 영화보다 훨씬 재미있다. 주인 노인이 동네 사람들의 고민 상담을 해주던 오래된 잡화점에 젊고 어설픈 3인조 강도가 숨어들고, 30년 전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엇갈리며 마법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는 이야기는 그대로다. 잡화점 주인 나미야와 젊은 시절 연인 아키코의 이야기를 앞세운 액자 구조 덕에 극의 개연성과 몰입도는 훨씬 높아졌다. 좁은 무대를 알뜰히 활용해 정교한 조명과 배우들의 천연덕스러운 연기로 겹쳐지는 시간대를 표현하는 방식 역시 우리 연극이 훨씬 세련됐다. 과도한 진지함을 덜어내고 슬랩스틱 코미디 트리오처럼 난리를 피우는 젊은 강도 3인조는 웃음을 담당한다. 원작 속 등장인물 '생선가게 뮤지션'이 작곡한 노래 '재생(Reborn)'은 김경육 음악감독이 새로 가사를 쓰고 곡을 붙였다. 막이 내려가도 오래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노래다. 당장 내게 닥친 슬픔이 어디선가 누군가의 행복으로 이어지리라는 순진한 믿음 역시, 부드럽지만 묵직한 위로로 다가온다. 두 공연 모두 10월 21일까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