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아이가 셋인데, 걔들이 결혼해 손주를 낳았어요. 객원 지휘자로 다시 만나는 서울시향이 제 눈엔 손자·손녀 같달까요. 아들딸이면 어떻게 키워야 하나 걱정돼 마음이 무거울 텐데, 손주는 그저 예뻐해주기만 하면 되는 존재. 친구와 다시 만나 음악을 하는 것처럼 재밌게 할 거예요."
2015년 12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지휘를 끝으로 서울시향을 떠났던 지휘자 정명훈(65)이 오는 12월 6~7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도이치 그라모폰(DG) 120주년 기념 갈라 콘서트'에 올라 서울시향을 다시 지휘한다. 2016년 8월 롯데콘서트홀 개관 공연에서 서울시향과 진은숙의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를 초연한 지 2년 4개월 만의 재회. 3일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만난 그는 "상임 지휘자가 되어 오케스트라를 발전시켜야 하는 무거운 책임을 오랫동안 졌다. 이젠 그런 책임을 맡고 싶지 않다"며 "다만 서울이든 파리든 난 음악가들을 언제나 '천사'라고 불렀는데, 서울시향이 내겐 언제 봐도 좋은 천사"라고 했다.
도이치 그라모폰은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클래식 음반사다. 1851년 독일에서 태어난 미국 발명가 에밀 베를리너가 최초의 원반형 디스크를 만든 뒤 그라모폰(Gramophone)이란 이름을 붙였고, 하노버에 공장을 차렸다. 베를리너는 미국 출신 프로듀서 프레드 가이즈버그와 손잡고 1902년 밀라노의 한 호텔 방에서 나폴리 허름한 뒷골목 태생인 한 남성에게 기계에 대고 노래를 부르게 했는데, 그가 바로 20세기 초 최고의 테너였던 엔리코 카루소다. 카루소 음반이 100만 장 넘게 팔리면서 DG의 역사도 본격 궤도에 올랐다.
올해로 120주년인 DG는 다음 달 7일 상하이를 시작으로 세계 10개 도시를 돌며 기념 콘서트를 연다. 창립일인 12월 6일, 하노버가 아닌 서울에서 펼쳐질 이 공연은 피아니스트 조성진, 바이올리니스트 아네조피 무터가 가세해 팬들의 기대를 더 모은다.
연주 곡목은 DG라는 이름에 맞춰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D'단조와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 'G'단조다. 클레멘스 트라우트만 DG 사장은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작품 '십이야(十二夜)'에서 오르시노 공작의 입을 빌려 '음악이 사랑이란 감정을 살찌게 해주는 음식이라면, 계속 연주해다오'라고 했다"며 "앞으로 또 120년 동안 사랑의 음악을 만들 수만 있다면… 120세 생일을 정명훈, 조성진과 함께 축하하게 돼 뜻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