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웅·주말뉴스부장

음식평론가 이용재씨는 지난해 조선일보 올해의 저자로 뽑힌 열 명 중 한 명입니다. 그의 새 책 '미식 대담'(반비 刊)을 읽다가 공감한 대목이 있습니다. 미쉐린 별 두 개를 받은 '권숙수'의 오너 셰프 권우중씨와의 대담. 이런 에피소드입니다. 대기업 자본으로 일본 도쿄에서 한식당을 여는 프로젝트가 있었답니다. 실패했죠.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이 대목이 컸답니다. 고심을 거듭해 메뉴를 선정하고 문을 열었는데, 그룹 회장님이나 사장님이 한마디 하시면 그걸 확 바꿔야 했다죠. 다음에는 전무님이 오셔서 또 한마디, 그럼 또 다른 메뉴로…. 결국 한 1년 버티다가 한숨과 함께 떠났답니다. '아, 이 배는 산으로 가는구나.'

한식은 모두가 전문가입니다. 우리의 밥, 김치, 찌개잖아요. 프랑스 파인 다이닝과 일본 가이세키 요리는 혹 조금 알더라도 침묵하지만 말이죠. 드라마와 영화도 그렇습니다. 클래식과 현대 미술은 전문가에게 마이크를 넘기면서도, 대중 엔터테인먼트에는 '나도 너만큼 알아'를 자처하죠.

가끔 드는 비유 중에 '돈키호테'의 한 대목이 있습니다. 와인 숙성하는 오크통을 앞에 두고 벌인 축제. 작가 세르반테스는 이 대목에서 두 명의 전문가를 출연시키죠. 전문가가 말합니다. "훌륭해요. 가죽 맛이 약간 나는 것만 제외하면." 또 한 명이 말합니다. "역시 좋군요. 그런데 쇠 맛이 섞인 게 조금 흠이랄까." 대중은 비웃죠. 전문가의 엇갈린 입맛을 비웃으며 각자의 방식으로 와인을 즐깁니다. 하지만 오크통 바닥이 드러났을 때, 그들은 눈을 크게 뜹니다. 바닥에 가죽끈이 달린 열쇠가 떨어져 있었거든요.

개인의 취향은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의 운명이 걸린 사업이나 나라의 명운이 걸린 결정이라면, 당연히 전문가의 판단을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요. 미국 군사안보 전문가인 톰 니콜스의 책 제목은 '전문가와 강적들: 나도 너만큼 알아'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위험한 시대다. 인류 역사상 지금처럼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이처럼 많은 지식을 접할 수 있었던 적도 없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토록 전문가로부터의 배움에 저항했던 적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