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출판 도시엔 다리가 여섯 개 있다. 그중 가장 큰 다리 이름은 응칠교(應七橋). 이기웅(78) 열화당 대표가 제안해 붙인 이름이다. '응칠'은 안중근 의사의 아명(兒名)이다. "출판 도시 만들 때 안중근 의사를 공사 감독하는 '정신적 감리인'으로 모셨어요. 힘들 때마다 안 의사에게 '지금 가는 길이 맞습니까' 하고 물었지요."
이기웅은 자타 공인 파주 출판 도시를 만든 주역이다. 1971년 출판사 열화당을 창업한 이기웅은 1988년 김경희(지식산업사), 김언호(한길사), 박맹호(민음사), 윤형두(범우사), 전병석(문예출판사) 등과 산에 오르며 의기투합한 아이디어를 현실로 일궈냈다. 파주 출판 도시는 2002년 첫 입주를 시작으로 이제는 외국에서도 주목하는 출판 전문 산업단지로 자리 잡았다. 이 대표는 지금 다시 안 의사에게 길을 묻는 중이다. 파주 헤이리에 '안중근기념 영혼도서관'을 짓고 있다. "마지막 봉사요, 몸짓"이라고 했다.
"보통 도서관과는 개념이 달라요. 안중근이란 이름은 '상징'으로 모신 것입니다. 안 의사는 감옥에서 자신의 이야기인 '안응칠 역사'를 썼잖아요.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을 모시는 도서관입니다. 시장을 저버릴 수는 없지만, 시장에서 승리하는 책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독자를 향해 깨달음을 요구하는 도서관입니다."
'영혼도서관'을 생각한 때는 10년도 더 된 오래전이다. 자신의 삶을 성찰해 쓴 책을 '모시는' 도서관을 떠올렸다. 주위 반응은 "그거 사업이 되겠는데요"였다. 일반인에게 자서전을 쓰게 하고 도서관에 책을 꽂아 훗날 유족에게 추모하게 하면 '장사 되겠다'는 것이었다. 이 대표는 "그건 아니다"고 했다. "묘원(墓園) 사업하려는 게 아니에요. 시신을 염하듯이 기록을 염해서 가지런하게 갖추는 일입니다. 가치를 정립하면 돈은 저절로 따라옵니다. 돈 버는 사업은 나중 일이에요."
이 대표는 "기록의 양식을 잘 갖춘 책을 영혼도서관에 꽂을 것"이라고 했다. '안응칠 역사' '백범일지' 같은 책을 예로 들었다. "정치적 포말에 휘말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우남(이승만)이나 육당(최남선)을 넣을 수도 있겠지요. 방향은 여러 사람과 함께 고민할 것입니다."
내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도서관 부지는 이 대표가 소유한 땅을 기부했다. 아나운서 황인용씨의 음악 감상실 '카메라타' 옆 500평(1652㎡)이다. 설계는 조병수 건축가가 무료로 맡았다. 건축 비용은 모금을 통해 충당한다. 이 대표는 "지금까지 45억원을 모았는데 완공까지는 더 비용이 든다"면서 "서가를 어떻게 짜야 할지 같은 세부 사항도 아직 정해진 게 없다"고 했다.
"지금 시대가 스산하잖아요? 기댈 수 있는 선배들의 족적에서 지혜를 찾아야 합니다. 워런 버핏은 '돈 벌기보다 기부하기가 더 어렵다'고 했어요. 가치 있게 기부할 곳 찾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지요. 영혼도서관은 민족혼(魂)을 찾는 거대한 사업입니다."
굵은 비가 쏟아진 지난 28일 응칠교 건너 열화당 사옥 4층에서 이 대표를 만났다. 응접실에 그림 한 점이 놓여 있다. 이 대표가 운전대를 잡은 승용차 뒷자리에 안 의사가 타고 있는 그림이다. 화가 서기문 전남대 교수가 선물한 그림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안 의사가 눈을 부릅뜨고 똑바로 길을 가는지 감독하고 계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