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분단 셋째 줄 소녀, 귤을 까먹다 노랗게 물든 손끝, 자꾸만 눈 마주치던 카페 알바생…. 돌이켜 추억으로 떠올리면 문득 특별해지는 일상의 풍경들이다. '재주소년' 박경환(34)은 늘 그런 모습을 포착해내는 뮤지션이다. 뭉근하게 퍼지는 기타 선율에 실은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책장 구석에 꽂아둔 일기장을 들킨 기분이다.
최근 훌쩍 동해 바다로 떠나는 청춘의 뒷모습을 그린 싱글 '첫 여행'을 낸 박경환을 광화문에서 만났다. 이번에는 본인의 일기를 담았단다. "2010년 재주소년이 해체했을 때 썼던 곡이에요." 그때 혼자 동해 바다를 여행했던 자신의 모습이 담긴 곡들이다.
재주소년은 2003년 제주대 출신 박경환과 한라대 출신 유상봉이 만나 데뷔한 포크 그룹이다. "1980년대 듀오 '어떤날'의 환생"이라 불릴 정도로 호평받았지만 방송 출연과 무대가 낯설던 유상봉은 스튜디오 뮤지션으로 남길 원했다. "자기만의 속도가 있던 친구라서 굳이 잡아둘 수는 없었죠."
그렇게 홀로 서게 된 스물여덟의 박경환은 무작정 기타 세 대와 앰프를 차에 싣고 동해로 유랑을 떠나 6~7개월을 여행했다. "떠날 땐 마냥 설�는데 돌이켜 보면 사실 많이 불안했다"고 했다. 스무 살 때부터 음악 하는 것을 부모님이 썩 달가워하지 않았기에 "늘 사회에 제대로 뿌리박고 있는 일원이란 걸 확인하고픈 부담감이 있었다"고 했다.
여행을 하다가 공연이 가능한 클럽을 섭외해 소셜미디어로 공연 공지를 띄우고 무작정 달려가 기타 치며 노래했다. "회사원에게 4대 보험이 중요하다면, 제겐 언제든 공연할 수 있는 무대가 있다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죠." 재주소년을 떠난 유상봉은 5집부터 앨범 녹음할 때 기타를 연주해주며 돕고 있으나, 여전히 활동은 박경환 혼자 하고 있다.
박경환은 이제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재주소년'이란 이름으로 청춘을 노래한다. 스스로 "아재가 됐다"고 할 만큼 청춘과 멀어진 것 같지만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것도 많다"고 했다. "마냥 설레고 예뻤던 첫사랑도 지나고 나면 느낌이 달라지잖아요."
박경환은 "주변에서 평생 청춘만 노래할 거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면서도 9월에 발표할 새 노래 '못 하면 어때' 역시 청춘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육아와 결혼, 심지어 사회 문제도 재주소년만의 감성으로 노래하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