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23일 이규진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피의자 신분으로 공개 소환했다. 이 부장판사는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재직하면서 사법 행정에 비판적이던 법관 모임의 동향을 파악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보고한 혐의를 받고 있다.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진 지난해 2월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에게 공용 컴퓨터 내 파일 2만여 건을 삭제하도록 지시한 혐의도 있다.

이날 오전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한 이 부장판사는 취재진 앞에서 "이 자리에 서게 된 것만으로도 한없이 참담하고 부끄럽다"며 "검찰에 출석해 진술하게 된 이상 아는 대로 사실대로 진술할 생각"이라고 했다. 검찰은 또 이날 수사 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대구지법 포항지원 나모 부장판사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나 부장판사는 서울서부지법 기획법관으로 근무하던 2016년 검찰이 수사하던 '법원 집행관 비리 사건' 수사 진행 상황을 영장전담판사로부터 빼내 행정처에 보고한 혐의를 받고 있다. 기획법관은 각급 법원에서 행정과 공보 업무를 담당하는 판사다. 검찰은 2013~2014년 법원행정처 심의관을 지낸 나 부장판사가 법원 비리 수사가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수사 기밀을 유출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비슷한 혐의를 받고 있는 신광렬 서울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은 기각됐다. 신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이던 2016년 최유정 변호사와 김수천 부장판사 등이 연루된 법조비리 사건의 수사 기밀을 영장전담판사로부터 얻어 법원행정처에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두 사람이 같은 수법으로 수사 기밀을 빼내 유출했는데 한 사람은 발부되고 다른 사람은 기각됐다"고 반발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형사수석부장판사는 영장전담판사들을 지휘한다"며 "지휘 계통에 있는 판사들의 업무 현황을 파악한 것을 공무상 비밀누설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나 부장판사는 영장 업무과 관련 없는 기획법관이었지만, 신 부장판사는 영장전담판사들의 상급자여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