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현 미술가·이화여대 교수

40여 년 전부터 혼행, 즉 혼자 여행을 자주 해왔다. 혼행은 필히 혼밥과 혼술을 수반하게 되니 나는 오늘날 만연한 혼놀의 원조인 셈인데, 어려서부터 뭐든 혼자 하는 게 마음 편하고, 남의 시선을 개의치 않다 보니 생긴 습관이다. 혼행은 오롯한 성찰로써 인간관계를 짚어 보게 해 역설적으로 사회성을 강화하는 순기능이 있고, 여럿이 떠들썩하게 어울리는 것보다 처절한 외로움을 감내하는 과정에서 예술의 근육이 배양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예전에는 혼놀, 혼행이 일반에게 낯설었기에 갖은 눈총과 박대는 물론 오해도 많이 받았다.

1980년대 중반, 20대 시절에 폭설이 내린 제주도 한라산 1100고지 인근을 홀로 걷다가 눈 더미 속에서 어떤 노인 변사체를 발견한 적이 있다. 혼비백산하여 근처 산장에 신고했는데 혼자 여행을 왔다는 사실을 이상하게 여긴 산장 사람들이 나를 억류, 장시간 경찰 조사까지 받게 했다. 결국 노인이 뭍으로부터 혼자 입산하여 스스로 결심을 한 사실이 드러나 풀려나긴 했지만 그때 그 노인의 모습과 주변 정황 등 가슴 아픈 잔상이 오랫동안 내게 남았다. 그럼에도 그때는 나의 힘듦만 생각했지 노인을 그런 길로 이끈 외로움의 무게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요즘 검색어로 혼밥, 혼술, 혼행을 입력하면 혼족들의 구미를 자극하는 온갖 정보와 광고들이 난무하니 외로움도 비즈니스의 호재가 된 모양새다. 미래를 읽을 수 없는 젊은 세대의 무기력과 상실감이 외로움의 정서에 과잉 반응하면서 그들을 혼놀 문화에 탐닉하게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와중에 외로움 논의에서조차 소외된 노년은 스마트한 혼행은 언감생심, 오늘도 골방행이거나 무료 전철로 하릴없이 수도권을 배회할 따름이다. 과연 어느 세대가 더 불행한가를 견주려 함이 아니다. 피차 이해하고 보듬어야 한다는 거다. 헛된 가정이지만, 저 1980년대 나의 과거로 시간을 돌려 혹시라도 한라산을 향하는 그 노인을 만날 수만 있다면 눈물 모아 손을 내밀고 싶다. 님아 그 산을 오르지 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