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서울대공원 ‘장미의 언덕’에서 토막시신이 발견됐다. 잔인한 시신 훼손 수법을 두고 원한에 의한 살인 가능성이 제기됐다. 그러나 사흘 만에 붙잡힌 범인은 노래방 주인이었다. ‘진상 손님’을 살해한 것. 두 사람은 사건 이전에 일면식도 없던 사이다.

‘장미의 언덕’ 토막 살인 사건 피의자 변모(34)씨가 지난 21일 경기 과천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변모(34)씨는 경기도 안양시에 노래방을 차렸다. 도우미가 나오는 유흥주점이었다. 장사는 잘 안됐다. 주변에 "이것저것 빼면 남는 게 하나도 없다" "손님이 없어서 온종일 공치고 있다"며 한탄하는 일이 많아졌다. 변씨는 가게를 차린 지 6개월 만에 폐업을 생각했다고 한다.

변씨 노래방에 출입한 도우미들은 그를 ‘예의 바른 사장님’으로 기억했다. "싹싹하게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지는 못했지만, ‘도우미 언니’들이 다녀갈 때면 항상 고맙다고 인사했어요. 예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격이 고지식했어요. 손님이 캔맥주 하나만 서비스로 달라고 하면 줄 법도 한데 ‘안 된다’고 딱 자르더라고요." 주변 상인 이모(53)씨 얘기다.

지난 10일 새벽, 폐업을 고심하던 변씨 노래방에 만취한 손님이 하나 찾아 왔다. 숨진 안모(51)씨였다. ‘도우미 언니’가 방으로 들어갔지만, 안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안씨는 "노래방에서 도우미 쓰는 것 불법 아니냐. 내 돈 돌려달라. 아니면 112에 신고하겠다"면서 난동부렸다는 것이다. 경찰에 신고하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격분한 노래방 주인 변씨가 과도를 꺼냈다. 놀란 안씨는 뒤돌아 도망가려 했다. 순간 변씨의 뇌리에 ‘저 사람이 노래방을 나가면 진짜 신고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고 한다. 결국 그는 손에 쥔 흉기로 피해자의 뒷목을 찔러 살해했다. 즉사였다.

범행 당일, 변씨는 살해 현장인 노래방 안에 시신을 방치했다. 날이 밝자 시신을 유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지하 1층 노래방 내부에서 준비한 공구를 이용해 시신을 세 차례 절단했다. 이후 스마트폰으로 시신 유기장소를 검색했다. 수풀이 우거진 곳을 찾던 그의 눈에 서울대공원이 들어왔다. 서울대공원을 시신 유기장소로 택한 이유에 대해 변씨는 "네이버 지도로 보니 수풀이 많아서"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신 유기시점은 같은 날 오후 11시 40분으로 파악됐다. 변씨는 자신의 쏘렌토 차량 트렁크에 훼손된 시신을 싣고 서울대공원으로 진입했다. 목격자가 있을까 두려워, 전조등은 꺼 둔 상태였다. "심장이 떨려서 미쳐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운전하는 내내 조마조마했습니다. (유기장소에)도착해서도 누가 볼 것 같아서… 시신을 끌고 가는데 생각보다 너무 무거웠습니다. 그래서 깊숙한 곳으로 못 가고 입구 쪽에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변씨 진술이다.

지난 21일 체포된 ‘장미의 언덕’ 토막 살인 사건 피의자 변모씨가 운영하는 경기 안양시 노래방.

"회색 쏘렌토 차량, 현재 서해안고속도로 타고 남쪽으로 이동합니다." 경찰은 사건 발생 사흘째인 지난 21일 변씨의 동선을 파악했다. 서울대공원 CCTV 분석 끝에 용의자 신원을 특정한 것이다.

변씨가 서해안고속도로 서산휴게소에 들렀을 때쯤 형사들도 이곳에 당도했다. 당시 변씨는 운전석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고 한다. 밖에서 형사들이 차 문을 벌컥 열어 젖히자, 변씨는 저항하지 못했다. "목적지 없이 그냥 도망가고 있었습니다. 죽인 것을 인정합니다."

변씨는 별다른 전과가 없었다. 경찰은 우발적 살해로 가닥 잡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피해자 안씨의 방에 들어갔던 도우미를 상대로 추가 조사할 예정"이라면서 "이르면 오늘 변씨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변씨 가게 주변의 또 다른 노래방 사장 A(50)씨 얘기다. "진상 손님이 있어요. 20만원 도우미 불러놓고 나갈 때 ‘불법 도우미 영업했으니 신고하겠다’고 윽박지르는 식입니다. 도리어 30만원 내놓으라는 손님도 봤어요. 저 같은 노래방 사장들은 돈 주어 보내주지만 신고 협박 스트레스가 상당합니다." 업소에서 도우미를 제공하는 것은 불법이다.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들도 할 말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