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을 만났을 때 할 수 있는 두 가지 행동이 있다. 기절하거나, 원투 펀치를 날리거나. "정공법으로 가면 솔직히 승산이 없었다. 실력 좋은 만화가가 얼마나 많은데. 첫 웹툰을 그려놓고 마지막 장면을 한참 고민했다. 귀신과 맞닥뜨린 주인공이 어떻게 해야 재밌을까. 옆에 있던 친구가 그러더라. 때리라고." 코믹 공포 웹툰의 새 장을 열어젖힌 만화가 원주민(본명 김동현·30)이 말했다.

본인의 그림을 배경으로 앉은 원주민. 필명은 얼굴이 까맣다는 이유로 중학교 때 얻은 별명이다.

웹툰 '원주민 공포 만화'가 연재 1주년을 맞았다. 각종 기담을 풀어내는 옴니버스 만화로, 억울하게 죽어 구천을 떠돌던 태국 귀신이 주인공에게 타이 마사지를 해주는 결말로 치닫거나, 고시 합격을 위해 찾아간 악마가 알고 보니 개그맨 서경석(수험 학원 광고 모델)이라는 식으로 뒤통수를 기습한다. "2년 전부터 인터넷에 습작을 올렸고 1년 만에 정식 연재를 제안받았다"며 "담당자 미팅 장소에 연재 계획서와 포트폴리오 등을 제본해 갔더니 흡족해하더라"고 말했다.

원래 서양화 전공 미술 학도였다. 성균관대 재학 중이던 2011년엔 조선일보 주최 '아시아프'에 출품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전시회도 몇 번 열었지만 늘 허무했다. 대중에게서 너무 멀리 있었다. '그냥 우리끼리 놀고 있는 거 아닌가' 싶었다." 그러다 4학년 때 처음 웹툰을 봤다. "댓글 1만건 넘는 작품도 있더라. 바로 이거였다." 미술 학원 아르바이트 월급으로 버텨가며 웹툰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원체 둔한 성격이라 가위 한 번 눌려본 적 없지만, 공포의 소재는 무궁하다. "팬카페를 통해 사연을 제보받고 있다"고 했다. "외국서도 연락이 온다. 얼마 전엔 필리핀에서. 지인의 목소리를 따라 하는 괴존재에 대한 체험담이라는데, 조만간 만화로 옮길 예정이다." 섬뜩한 그림체로 유명하다. "대학 때 좋아하던 화가 뭉크의 영향 같다"고 했다. "죽음 저편에 뭐가 있을까 궁금했다. 콘크리트 바닥에 납작해진 꿩, 냄비에 담긴 붕어…. 그런 걸 자주 그렸다. '형용사'처럼 그리려고 노력한다. '기괴한' 만화를 그리려 하다 보면 기괴해지더라."

그러나 이 기괴한 만화의 핵심은 반전이고, 공포의 와중에 탄생하는 개그다. "예상을 깨는 전개를 위해 유행하는 유머는 전부 숙지한다. 특히 대사를 많이 고친다. 매주 월요일 최종 교정할 때 처음부터 뜯어고친다. 늘어지지 않도록." 이제 그의 만화에도 댓글이 수천 건씩 달린다. "술 한잔 하면서 댓글 다 읽는다. 벽 보고 말하는 기분이 아니라 좋다." 지난 19일엔 생애 첫 사인회가 열렸다. "파리 날릴까 몹시 두렵다"던 그는 곧 반전을 맞닥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