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낮 12시 서울 삼성동 코엑스 수제 맥주 전문점 '데블스도어'는 200여명의 직장인으로 북적였다. 손님 대부분이 피자·스파게티와 함께 맥주를 주문했다. 이곳을 운영하는 신세계푸드 형성진 팀장은 "요즘 점심 시간에 맥주를 찾는 이들이 많아 7월에는 전달보다 맥주 판매량이 18% 늘었다"며 "맥주와 어울리는 샌드위치 튀김 등 점심 메뉴 12종을 새로 낼 계획"이라고 했다.

낮술을 즐기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저녁에 취미 생활을 즐기기 위해 낮에 도수 낮은 술을 한잔 즐기는 이들이 많아졌다.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데다 '미투 운동'의 여파로 저녁 회식 자리가 줄어든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 9일 오후 서울 삼성동 맥줏집‘데블스도어’에서 직장인들이 점심과 함께 맥주를 마시고 있다.

지난 4월 문을 연 수제 맥주 전문점 '더부스' 신용산역점은 요즘 매일 점심때면 '피맥(피자+맥주)'을 즐기는 이들로 만석이 된다. 이곳 안재현 실장은 "저녁 대신 점심에 회식하는 문화가 확산됐고, 올해 더위가 심했던 것도 맥주 판매량 증가 원인으로 보인다"며 "점심 영업을 안 하는 다른 지점은 오후 5시에 문 열면 잠깐 술 마시고 나가는 손님이 많아 점심 영업을 고려 중"이라고 했다. 광화문의 맥줏집 '탭퍼블릭'의 유지훈 팀장은 "최근 오후 2~4시 사이 4~10명 정도 와서 팀 미팅을 하며 맥주 한두 잔씩 마시는 직장인들이 생겼다"고 했다. 미투 운동도 영향을 줬다. 직장인 이재원(37)씨는 "최근 들어 회사 저녁 술자리에 참석하지 않아도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라며 "회사 동료들이 점심 시간을 이용해 생일 파티를 하는 식으로 예전 술자리를 대신하고 있다"고 했다.

낮술 찾는 사람들이 늘자 저녁 영업만 하던 술집들이 오전에 문을 열고, 커피 팔던 카페에선 맥주와 주전부리를 팔기 시작했다. 경북 포항시 커피숍 '카페톤'은 외관은 평범한 카페지만 안에는 각종 수입 맥주가 그득하다. 직장인과 주부 사이에서 '낮에 맥주 마시는 카페'로 알려진 곳이다. 주인 김주연(36)씨는 "목요일과 금요일 점심에 맥주 찾는 직장인들이 많은 것을 보고 맥주도 갖춰놓기 시작했다"며 "점심에 맥주 두 병 넘게 마시는 손님은 거의 없고, 가벼운 안주와 함께 커피 한잔하듯 마시는 이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한림대 춘천성심병원 소화기센터 석기태 교수는 "낮에는 술을 빨리 마시는 경향이 있고, 낮술을 자주 하다 보면 매일 조금씩 마시는 습관이 생길 수도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