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박길우 디자이너

‘김병준 15회, 홍준표 3회’

자유한국당 김병준 혁신 비상대책위원장과 홍준표 전 대표의 취임 한 달 경제 관련 발언 횟수다. 두 사람이 언론에 공개된 공식행사에서 한 발언(김병준 27회, 홍준표 21회)을 분석해보니 이런 차이를 보였다. 김 위원장은 이틀에 한 번은 경제에 대한 언급을 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취임 후 경제정책으로 대여 공세 고삐를 죄면서 당 안팎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을 두고 '위장평화 쇼'라고 외치던 홍 전 대표와 확연히 비교되는 대목이다.

17일 김 위원장이 취임한 지 한 달을 맞았다. 김병준 호(號)는 6·13 지방선거 참패 이후 혼란에 빠진 당을 수습하고 무너진 보수정당을 재건하는 특명을 받고 지난달 17일 출범했다.

당내에서는 김 비대위원장 취임 후 ‘싸우는 한국당’ 이미지에서 벗어났다는 점을 가장 높이 평가하고 있다. 홍 전 대표는 재임 당시 당 안에서는 다른 계파들과, 당 밖에서는 여권과 늘 입씨름을 했다. 화법도 거칠어 매번 막말 논란에 휩싸였고, 당내에서도 이는 비판의 대상이 됐다.

김 위원장은 지방선거 이후 불거진 계파 갈등을 잠재웠고, 막말을 삼가며 ‘보수의 품격’을 되찾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권과는 정책·이념 투쟁을 하면서 당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데도 성공했다는 평이다.

여권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지지율 반전을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과제로 꼽힌다. 당내에서는 여전히 김 위원장의 당 쇄신 밑그림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 "홍준표와 다른 말의 품격이 계파 갈등 잠재웠다"

본보는 김 위원장과 홍 전 대표의 취임 한 달 공식 행사 발언을 분석했다. 김 위원장과 홍 전 대표는 한 달 동안 취임식, 외부 인사 접견, 당 회의, 기타 토론회 등의 당 주최 공식행사에 각각 27회와 21회 참석했다. 김 위원장은 경제 발언을 15회, 외교·안보 발언을 7회했다.

그는 취임 직후 "박정희식 국가 주도 성장 모델을 뛰어넘는 새로운 성장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며 경제 문제를 부각했다.

"진보진영에는 성장 정책이 없다"(7월 23일), "최저임금이 민생 경제를 더 어렵게 한다"(8월 1일), "정부가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제한) 규제 완화처럼 탈원전 정책도 전향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8월 9일) 등 구체적인 경제 이슈에 대한 발언을 이어갔다. 김 위원장의 외교·안보 발언도 경제와 연관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홍 전 대표도 취임 초반 외교·안보에 대한 발언을 자주 하지는 않았다. 총 21회 공식행사에서 외교·안보 발언은 2회에 불과하다. 당시 남북정상회담이나 북핵 폐기는 정치권 이슈가 아니었던 이유에서다. 하지만 홍 전 대표는 올들어 남북정상회담과 미북 정상회담이 잇달아 열리자 ‘위장평화 쇼’, ‘종북주사파 정권’ 등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 과정에서 막말도 서슴잖아 당 안팎의 비판을 사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김 위원장의 시각도 홍 전 대표와는 다르다. 지난 13일 정부가 제3차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발표하자 김 위원장은 "비핵화가 전제돼야 한다"면서도 환영의 뜻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평화체제는 좋은 것"이라고도 했다.

취임 한 달 홍 전 대표의 경제 관련 발언은 3건에 불과했다. 가장 먼저 나온 경제 관련은 발언은 지난해 7월 20일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재협상 개시를 앞두고 재협상 결과를 우려하는 내용이었다. 이후 지난 2017년도 추경 예산에서 공무원 증원 부분을 비판하는 발언이 1건 있었고, 나머지 1건은 소득주도성장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문제 등을 총체적으로 비판했다.

당내에서는 이처럼 홍준표 체제와 차별화된 전략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홍 전 대표가 주로 과격한 언어로 구설수를 겪었던 것과 달리, 김 위원장은 "정치 언어를 바꿔야 한국 정치가 발전한다"며 당 내외를 비교적 정제된 언어로 추스르고 있다.

김 위원장은 홍준표 체제에서 반복됐던 ‘색깔론’을 줄이고, 대신 ‘국가주의’라는 새로운 가치 논쟁에 불을 붙였다. 문재인 정부가 시장과 공동체에 지나치게 간섭하거나 개입한다며 이를 ‘국가주의’라고 규정한 뒤 ‘자율’의 가치를 앞세우고 있다. 그러면서 극우 보수적 시각은 경계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당내에서도 적이 많았던 홍 전 대표를 의식해 "과거 지향적인 인적 청산에 반대한다"면서 탕평책을 통해 극심한 당내 내홍을 수면 아래로 가라앉히기도 했다. 당내에서는 "김 위원장이 보수정당의 품격을 되찾았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김 위원장이 당 안정화에 크게 기여를 했다는 점 역시 내부적으로 이견이 없다. 김 위원장이 비대위원장으로 내정됐을 당시 ‘노무현 인사’라며 반대했던 진영에서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인적청산 같은 특정 계파를 겨냥한 발언은 자제하고 당 의원들과 두루 소통하면서 분당 위기까지 내몰렸던 당을 안정시켰다. 또 홍 전 대표가 거부해 열리지 않았던 중진연석회의도 부활시켜 중진 의원과도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비대위와 소위원회에 계파 상관없이 초재선·중진 의원을 두루 배치한 점도 좋은 점수를 받고 있다.

김 위원장은 특히 ‘정부 때리기’ 수위를 높여가며 제1야당 당 대표로서의 전투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관전평도 나온다.

지난 11일엔 북한산 석탄 반입 의혹 관련해 "국가가 있어야 할 곳에는 없고, 없어도 될 곳에는 완장을 차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지난달 30일에도 정부의 ‘먹방(먹는 방송) 규제’ 예고를 비판하며 "어리석은 백성도 아닌데 먹방에 대해 규제하겠다는 가이드라인 자체가 국가주의적 문화"라고 했다.

범친박계로 분류되는 한 중진 의원은 "김 위원장이 나름 열심히 하는 것 같다"며 "지방선거 이후 당이 어수선했던 것에 비하면 지금은 상당히 차분하다는 느낌"이라고 했다.

◇ 개혁 큰 그림 안 보인다는 비관론도 솔솔… "계파 갈등 수습은 착시"

자유한국당 김병준 혁신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에서 두번째)가 16일 오후 서울 광화문사거리 인근 도로에 마련된 소상공인119민원센터 천막에서 소상공인 결의 동참 서명을 하고 있다.

김 위원장의 지향점과 당 개혁 방안이 불분명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당의 가치 재정립과 인적청산, 환골탈태한 당의 민생해결 능력을 현 비대위 체제에선 기대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탈국가주의’와 ‘자유’라는 화두를 던지긴 했지만, 국민의 피부에 와닿지 않는 논쟁이라는 비판적 관점도 있다. 한 한국당 당직자는 "홍 전 대표의 경우 발언의 수위가 높긴 했지만, 메시지가 단순명료해서 지지층에 쾌감을 준다는 평가가 있었다"고 했다.

당 개혁안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비대위만 출범했을 뿐 과거 한나라당과 차별점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인적 쇄신 부재가 원인으로 꼽힌다. 당 쇄신을 이끌 비대위 구성에도 ‘존재감’ 있는 인물이 없다. 김 위원장이 당 개혁안을 만들더라도 추진 동력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한 재선 의원은 "김 위원장이 인적청산에 대한 거부감을 확실히 드러내면서 당내 의원들도 비대위에 관심을 끊었다"며 "당장 공천개혁이나 인적 쇄신을 하지 않겠다고 하니 당 의원들도 비대위 활동에 그리 불만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계파 갈등이 사라졌다고 했는데 이런 이유 때문 아니겠나"고 했다.

한 친박 의원은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은 정당성의 한계가 있다"며 "인적 청산은 물론이거니와, 당내 개혁도 제대로 추동력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정당 지지율도 답보상태다. 한국당의 정당 지지도는 11%까지 떨어지며 의석수 5석의 정의당에도 뒤처졌다. 보통 비대위가 출범하면 일시적으로 지지율이 오르는 ‘컨벤션효과’를 누리는데 김병준 체제는 그마저도 없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지난 14일부터 16일까지 사흘간 전국 성인 1002명에게 설문 조사(표본오차는 ±3.1%포인트, 95% 신뢰수준)한 결과 한국당의 정당지지도는 11%였다. 더불어민주당은 44%, 정의당 15%, 바른미래당 6%, 민주평화당 1% 등이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지지율) 하락세가 멈춘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했지만, 당 일각에서는 "이제는 성과를 보여줄 때가 됐다"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한 의원은 "지금까지는 허니문 기간이었다면 앞으로 본게임이 시작되는 것"이라며 "국민들은 오래 기다려주지 않는다. 앞으로 한 달 내에는 반드시 구체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