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역의 언론사 350여곳이 16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적대적 언론관을 비판하는 사설을 신문에 발행하겠다고 예고한 가운데, ‘반(反)트럼프 사설 연대’를 제안한 보스턴글로브 등이 15일 온라인판에 관련 사설을 먼저 싣고 언론을 ‘국민의 적’으로 규정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보스턴글로브는 2018년 8월 15일 홈페이지에 ‘언론인은 적이 아니다(Journalists are not the enemy)’는 제목의 사설을 싣고 미국 내 언론 자유의 보장을 촉구했다.

보스턴글로브는 이날 홈페이지 1면에 실은 ‘언론인은 적이 아니다(Journalists are not the enemy)’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식 정치의 핵심 기둥은 언론에 대한 지속적인 공격”이라며 “언론을 향한 이런 가차없는 공격은 위험한 결과를 초래한다. 이에 우리는 오늘 전국의 모든 언론사 편집위원회에 이 근본적인 위협의 위험성을 그들의 언어로 직접 설명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서문을 열었다.

보스턴글로브는 “부패 정권이 집권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자유 언론을 국영 언론으로 바꾸는 일”이라며 “오늘날 미국에는 현 행정부의 정책을 노골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언론은 ‘국민의 적’이라고 주문을 외는 대통령이 있다. 이는 이 대통령이 해온 수많은 거짓말 중 하나이며, 마치 그 옛날 돌팔이들이 사람들에게 ‘마법’이라며 가루나 물을 뿌리는 것과 같다”고 했다.

신문은 그러면서 “미국의 제 2대 대통령을 지낸 존 애덤스가 주창한 이래 전세계 언론인들이 표방한 ‘언론의 자유는 자유 보장에 필수적’이라는 원칙이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고 했다. 신문은 “한때 미국에는 언론이 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광범위하고 초당적이며 세대를 아우르는 합의가 있었다”며 “지금은 공화당 지지층 43%를 포함해 미국인의 4분의 1 이상이 ‘대통령에게는 나쁘게 행동하는 뉴스 매체를 폐쇄할 권한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고 지적했다.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지난 3~6일 미국 성인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13%는 ‘트럼프 대통령이 CNN과 워싱턴포스트(WP),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언론매체를 폐쇄해야 한다’고 답했다. 공화당 소속 응답자의 51%는 언론을 ‘민주주의에 필수불가결한 존재’ 대신 ‘국민의 적’이라고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2018년 8월 15일 홈페이지에 ‘자유 언론은 당신을 필요로 한다(A FREE PRESS NEEDS YOU)’는 제목의 사설을 싣고 독자들에게 언론에 적대적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맞서 연대할 것을 당부했다.

NYT도 이날 ‘자유 언론은 당신을 필요로 한다(A FREE PRESS NEEDS YOU)’는 제목의 사설을 홈페이지에 올리고 독자들의 ‘반(反)트럼프 연대’ 동참을 당부했다.

NYT는 토머스 제퍼슨 등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을 예로 들며 “박식한 대중은 부패를 근절하고, 장기적으로 자유와 정의를 증진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장비를 갖추고 있다”고 했다. 대통령이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1964년 미 연방대법원이 “공공의 토론은 정치적 의무”라는 판결을 내린 것처럼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의 존재는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신문은 또 “스스로의 잘못을 바로잡는 게 우리가 하는 일의 핵심”이라며 언론이 사실을 축소 또는 과장 보도하거나 오보를 낼 때 정부가 이를 비판하는 것은 타당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진실을 ‘가짜 뉴스’라고 주장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지난주 보스턴글로브의 전화를 받고 수백개의 언론사들과 함께 독자들에게 미국 자유 언론의 가치를 상기시키는 데 동참하기로 했다”며 사설 밑에 미 전역의 언론사 사설을 발췌해 소개했다. 신문은 이어 독자들에게 “아직 지역 신문을 구독하지 않았다면 구독해달라. 그들이 잘했을 때 그들을 칭찬하고, 그들이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들 땐 그들을 비난하라”며 “우리는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미주리주 지역 언론사 ‘세인트루이스 포스트 디스패치’는 2018년 8월 15일 반(反)트럼프 사설 발행에 앞서 홈페이지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의 여러 풍자만화를 모아 게재했다.

16일로 예정된 ‘연대 사설’ 게재에 앞서 ‘덴버 포스트’, ‘탬파베이 타임스’, ‘데일리 프리 프레스’, ‘콜럼버스 디스패치’ 등 지역 신문들도 홈페이지에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언론 기조를 비판하는 사설을 실었다. 매사추세츠주의 ‘선 크로니클’은 “본 신문은 대통령이 뿌린 경멸의 쓴맛을 직접 맛봤다”며 “고등학교 졸업식을 취재하기 위해 나선 기자 한명은 그의 직업을 밝히자 ‘오, 우리는 당신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모든 언론과 언론인이 이 같은 움직임에 동의하거나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한 예다. WSJ의 칼럼니스트 제임스 프리먼은 “보스턴글로브의 제안은 일부 편집자들에게 딜레마를 안겨줄 수 있다”고 했다. 대부분의 편집위원회가 그들이 속해있는 언론사 보도국과의 독립성을 강조하는데, 다른 언론사들과 협동해 같은 목소리를 내는건 과연 도의적으로 옳은 일이냐는 지적이다.

프리먼은 또 “언론사 수십, 수백곳이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는 글을 싣는 건 오히려 공화당 측 지지자들을 언론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일”이라며 “보스턴글로브의 노력이 독자층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대통령에 반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북돋아주기 위한 거라면, 이건 저널리즘보다는 정치적인 전략에 가깝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