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 Auguste Renoir·1841~1919)가 그린 줄리 마네다. 줄리 마네는 인상주의 화가 베르트 모리조와 외젠 마네 사이의 외동딸이다. 외젠 마네는 그 유명한 인상주의의 대부(代父), 에두아르 마네의 남동생이다. 이렇다 보니 줄리는 갓난아기 때부터 어머니, 아버지, 큰아버지, 그리고 그 친구들인 르누아르, 드가, 시슬리 등의 그림 속에 수시로 등장했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고양이를 안은 줄리 마네, 1887년, 캔버스에 유채, 65×54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줄리의 큰아버지 마네와 유난히 각별했던 르누아르의 그림에 등장하는 줄리는 아홉 살이다. 뚜렷한 입술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아몬드처럼 크고 긴 눈을 사선으로 내리뜬 줄리의 표정은 나이답지 않게 성숙해 보인다. 하지만 인간이 그림을 그리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주인의 품을 파고드는 고양이를 부둥켜안은 모습에서는 천진함이 느껴진다.

줄리의 기억 속에서 르누아르는 그녀의 자세를 여러 번 고쳐 그렸고, 평소와 달리 그림을 작은 부분으로 나누어 그렸다고 했다. 줄리의 어머니는 완성작을 좋아했지만, 동료 화가 드가는 "얼굴이 너무 둥글어서 꽃병 같다"고 투덜거렸다. 실제로 이즈음부터 르누아르는 인상주의 초기의 파스텔톤 색채와 사방으로 흩어지듯 분절된 붓 터치를 버리고, 고전적인 회화의 안정된 색과 구도, 선(線)이 강조된 드로잉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불행히도 줄리는 십대에 부모를 모두 잃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뜬 뒤 3년 만에 어머니조차 줄리의 병간호를 마치고 폐렴으로 죽었다. 졸지에 고아가 된 그녀는 시인 말라르메가 돌봤고, 르누아르 또한 그녀의 곁을 지키며 자라나는 모습을 여러 점의 초상화로 남겼다. 줄리 마네는 그야말로 ‘인상주의의 딸’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