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삼희 수석논설위원

6일 유엔 산하 정부간기후변화협의체(IPCC)의 이회성(고려대 그린스쿨대학원 석좌교수) 의장을 서울 신대방동 기상청의 국내 사무실로 찾아가 만났다. 그날 조선일보에는 '유럽이 사하라 사막 뺨치게 덥다'는 기사가 실렸다. 포르투갈이 섭씨 47도까지 올라갔다는 것이다. 이 의장은 에너지경제연구원장 출신으로 2015년 10월 IPCC 의장으로 선출됐다.

―지금 전 세계 폭염이 이산화탄소 때문인가.

"특정 연도의 기상이 온실가스로 야기된 기후변화 결과라고 확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기온은 자연 요인만 갖고도 매년 급등락한다. 그래서 30년 단위로 평균화된 통계를 제시해야 의미 있는 흐름으로 해석된다. 1년짜리 특이 기상은 신호(signal)가 아니라 소음(noise)일 수 있다. 다만 2014년의 IPCC 5차 보고서는 인간 배출 온실가스가 20세기 중반 이후 기온 상승의 주된 원인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extremely likely)'고 결론지었다. '대단히 높다'는 건 95%가 넘는 확률을 말한다."

―2015년의 파리협약은 기온 상승치를 '산업혁명 이후 2도 미만'으로 억제하는 걸 목표로 삼았다. 이게 가능한가. 이미 0.9도 올라갔고, 당장 온실가스 농도를 현 수준으로 묶더라도 바다의 '열관성(thermal inertia)' 때문에 0.3~0.6도 더 오를 수밖에 없고, 에너지 인프라도 시스템 관성이 있어 0.5~0.7도 추가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있다.

"파리협약은 전환점이 될 것이다. 종전 협약인 교토의정서는 선진국에만 감축 의무를 부여했다. 파리협약에선 개도국까지 참여하는 실천이 시작됐다. 각국이 자기 여건과 능력에 맞는 목표를 내놓고 자발적으로 실천하고, 5년마다 이행 여부에 대해 국제사회의 검증(review)을 받아야 한다. 다만 각국의 약속이 다 이행돼도 기온은 2.7도 올라간다는 분석이 나와 있다."

―기후변화가 실제 얼마나 심각한 사태를 일으킬지 아직 불확실하다는 점이 각국의 적극적 실천을 이끌어내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온실가스 대책은 일종의 보험 비슷하다. 집에 불이 날 거라고 100% 확신하기 때문에 화재보험에 드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 가능성은 거의 스모킹건(smoking gun) 수준에 와 있다. 더 명확해지기까지 기다리겠다고 하면 늦어버린다."

이회성 IPCC 의장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탄소세 등의 정책 수단을 잘만 활용하면 국가 경쟁력에도 도움이 되는 선순환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기후는 평형이 삐끗 흔들리기만 해도 큰 충격으로 올 수 있다. 해수면이 10m 상승하면 인구의 10%가 움직여야 한다. 지금 시리아 같은 작은 나라에서 발생한 난민만 갖고도 유럽 전역이 어쩔 줄 모르고 있다. 식량은 약간만 생산이 줄어도 가격은 급등할 수 있다.

"2014년 5차 보고서까지는 난민, 이른바 '비자발적 이주'에 대한 얘기가 없었다. 그 뒤 시리아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많은 연구 결과가 나온다. 중동과 북아프리카는 가뭄과 흉작에 이은 사회 불안의 도미노 위험이 있다. 6차 보고서에서 이를 다루려 한다."

―기후변화에 대한 경감심은 아직 크게 부족하다. 특히 국가라는 의사 결정 단위는 극단적으로 이기적이다.

"다보스 포럼 등에서 전문가 상대 설문을 해보면 늘 기후 문제가 최상위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미래에 닥칠 기후변화보다 테러, 불황, 가난, 범죄, 보건 등 당장 해결할 과제를 더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지난 30년간 기후변화의 암울한 재앙 시나리오를 너무 부각했던 것이 되레 사람들이 이 문제를 기피하게 만들었다는 지적도 있다. 어떻게 일반 시민에게 접근할 건지 사회과학적, 심리학적 연구가 필요하다."

―IPCC는 기후 급변 가능성을 무시한다는 비판이 있다. 그린란드나 남극 서부 빙하가 무너져 내리거나, 바다 밑 퇴적토 아래에 얼음 형태로 갇혀 있는 메탄가스층의 붕괴 가능성 같은 것이다.

"IPCC는 동료 검증(peer review)을 거쳐 발표된 과학 논문들을 토대로 보고서를 작성한다. 빙하 밑바닥 상황 등은 아직 관찰이나 측정 결과가 없는 추정일 뿐이어서 의미 있는 논문이 나오지 않고 있다. 그래서 진지하게 다루지 못하는 것이다."

―기후변화 극복 방법은 결국 신재생과 원자력일 것이다. 그 둘을 갖고 화석연료를 대체해야 한다. 국내의 탈원전 논쟁은 어떻게 보나.

"IPCC는 개별 국가에 대한 구체적 정책 처방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이다(이 의장은 여기서 '정치에 오염되면 곤란'이라는 표현을 썼다. IPCC가 특정 국가군, 특정 업계를 편들거나 적대시해 갈등이 생기면 세계적 공동 보조를 이끌어내는 데 방해가 된다는 뜻으로 이해됐다).

유럽 온실가스 줄었지만… "개도국에 공해 시설 옮긴 결과일 수도"
선진국·개도국 처한 현실 달라 "공통되면서 차별화된 책임 중요"

기후변화 대응은 전 지구적 공동보조가 필요하다. 그러나 어느 나라든 자기는 무임승차(free ride)하고 남이 대신해주길 바란다. 이 의장에게 이 문제를 강조해 물어봤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작년 6월 1일 파리협약에서 탈퇴하면서 '미국 시민의 복리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선언했다. 국가 간 협력이 가능한가.

"기후변화 실천이 각국 경제에 해가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예를 들어 탄소세를 매기면서 법인세나 소득세를 낮춰주면 세 부담은 똑같이 유지하면서 경제 체질 개선이 가능하다. 환경과 경제를 다 이롭게 하는 선순환이 가능하다. 개도국과 선진국이 '공통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y)' 원칙 아래 추진해가야 한다."

―국가 간 책임의 수준을 따지는 문제가 어렵다. 예를 들어 중국의 경우 요즘 자국 공장들은 선진국 국민이 소비할 상품을 생산하는 것이고 자국민은 미세 먼지 등 공해 피해만 입고 있다고 주장한다. 중국이 앞장서 주겠는가.

"유럽에서도 온실가스 배출 통계를 생산지 기준으로만 잡아온 데 대한 문제 제기가 있다. 유럽 온실가스 배출량은 최근 줄어드는 추세다. 그런데 속 내용을 뜯어보면 에너지 집약적이고 공해를 배출하는 생산 부문을 개도국으로 이전시켜 나온 결과일 뿐이라는 것이다. 계속 논의해볼 사안이다."

―기후변화를 위기로 느끼는 민감도에서도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심지어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날씨가 따뜻해진다면 모피 살 돈을 아낄 수 있으니 러시아인들에겐 기쁜 일'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해수면 상승도 해안 국가들에 피해가 집중된다.

"오존층 파괴는 피부암이라는 당장의 피해에 대한 두려움이 세계의 단합된 행동을 가능하게 했다. 반면 기후변화는 하늘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은 눈에 보이는 위협이 없다. 기후변화는 불확실성 아래서 어떻게 실천을 유도하느냐가 문제다. 특히 미래 예측이 굉장히 어렵다. IPCC는 그래서 여러 개의 시나리오를 제시하는 방법으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정부간기후변화협의체 IPCC]
각국 기후변화 전문가, 전례없이 2500명 참여

IPCC는 1988년 유엔환경계획과 세계기상기구가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설립했다. 195개국이 가입해 있다. 1990·1995·2001·2007·2014년의 다섯 차례에 걸쳐 방대한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는 '과학 근거' '미래 영향' '정책 선택'의 세 개 분야로 나눠 작성된다. 2013~14년에 발간한 5차 보고서 중 1552쪽짜리 '과학 근거' 보고서 경우 세계 259명의 전문가가 주 저자(Lead Author)로 참여했다. 저자들은 자원봉사 형식으로 참가한다. 보고서 작성을 도운 보조 저자(Contributing Author)도 600명쯤 된다.

세 개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전문가 숫자는 총 2500명이라고도 하고 3500명이라고도 한다. 한 사람이 여러 분과에 관여할 수 있어 정확한 숫자는 파악이 안 된다. 세계 각국 전문가들이 이만한 규모로 참여해 보고서를 작성한다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IPCC가 독자 연구를 수행하는 기구는 아니다. 과학 저널에 발표된 연구 결과들을 평가하고 종합해 해당 시점에서 최선의 견해를 제시하는 것이다. IPCC 보고서는 유엔기후협약 협상의 근거 자료로 활용되지만 강제성을 담은 정책 권고나 결정을 만들어내진 않는다. IPCC는 2007년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과 함께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