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전형 확대하겠다면서 비율은 '미정'
여름방학 맞은 중3 "고입이 코 앞인데…"
결국 수능·내신·비교과·논술 다 잘해야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가 수학능력평가(수능)전형을 확대하되, 구체적인 비율은 정하지 않은 '2022학년도 대학 입시 개편 권고안'을 발표하면서 중학교 교실이 혼란에 빠졌다. 당장 11월부터 고입(高入)이 다가오는데, 모호한 '권고안'만으로는 어느 고교에 지원해야 할지 결정 못하겠다는 것이다. 돌고 돌아 '현행유지'로 가닥이 잡힌 데 대해서는 "우리가 (교육 정책의) 실험용 생쥐냐"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2022학년도 대입 개편안은 현재 중학교 3학년이 치른다.

서울의 한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기말고사를 치르고 있다.

◇高入이 코 앞인데…'깜깜이 여름방학'
강원도 춘천에서 중학교를 다니는 3학년 신채희(15)양은 여름방학을 맞아 고입준비에 한창이다.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신양은 의대 진학이 목표다. 그러나 신양은 이날 발표된 '대입 개편 권고안'을 접하고 고민에 빠졌다.

신양은 “고입이 코 앞인데 수능으로 얼마 만큼 뽑는지도 말해주지 않아 ‘깜깜이’로 여름방학을 보낼까 봐 걱정”이라면서 “의료·아동 관련 봉사를 계속해왔는데, 수능 전형을 늘린다면 지금까지 해온 것들은 물거품이 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분당 구미중학교를 다니는 김예올(15)양은 “입시제도와 교육과정이 한번에 바뀌고 ‘자율학기제’도 중학교 3학년에게 첫 적용된다”며 “친구들 사이에서 ‘중3이 무슨 교육정책 실험쥐냐’는 말이 나온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속이 탄다. 인천에 거주하는 중3 학부모 이모(43)씨는 “어떤 대입안이 나오는지에 따라 일반고로 갈지, 특목고에 도전할지 결정할 텐데, 교육부 ‘결정장애’ 때문에 학생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진학담당 교사도 '뾰족한 수'가 없다. "공론화위, 국가교육회의, 교육부가 돌아가면서 중3 대입안을 만지작거리면서 결국 시간만 까먹고 있는 것 아닙니까. 진학부장인 저조차도 권고안만으로는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조언을 못해줍니다. 아이들이 '저희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물어오면 그저 '정부 발표 신경 쓰지 마라, 좋은 책 많이 읽어라, 너의 꿈을 찾아라' 이런 이야기 말고는 할 수가 없습니다. 무력감을 느낍니다." 인천지역 중학교 진학부장 박모(38)교사가 말했다.

학생과 학부모, 학원가가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이날 발표가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국가교육회의는 수능 전형의 모집비율을 현행보다 확대할 것을 '권고'하면서도, 모집비율을 얼마로 할지는 결론 내리지 못했다. 국가교육회의 측은 "대학 별로 처한 상황, 신입생 선발방법 비율이 달라 구체적인 수능위주 전형비율을 정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입시전문가들은 현재 20%대에 머무는 정시모집 비율이 40% 안팎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교육부가 최종적으로 어떤 결정을 내릴지 결정된 바 없다. 중3학생들은 이런 상황에서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다.

지난 6월 서울 강남구 진선여자고등학교에서 열린 종로학원 입시설명회.

서울 중랑구에 거주하는 중3학생 학부모 김영숙(47)씨는 “지금 중학교 3학년 아이 둔 학부모들은 고입이 코 앞이라 입시설명회를 찾아 다니느라 정신 없는데, 수능 전형 모집비율도 모르고 있다”면서 “입시가 복잡해질수록 학부모들은 힘들다는 점을 ‘높으신 분’들이 제발 고려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성호 종로학원 하늘교육 대표는 “교육부가 하루빨리 수능전형 모집비율을 확정해서 학생들 혼란을 최소화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수능·내신·논술·학생부 다 잘해야
결정된 사안이 없으니 중3학생들은 일단 내신이든 수능이든 학생부종합전형이든 모두 챙길 수밖에 없다. 서울 동대문구에 거주하는 중3 학부모 김현주(43)씨는 "아들이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선행학습, 봉사활동, 동아리, 수행평가를 다 챙길 생각에 겁에 질렸다"면서 한숨 쉬었다.

“공론화 과정에서 시간만 버린 것 같습니다. 결국 수능·내신·논술·학생부를 모두 챙겨야 한다는 것 아닌가요. 저도 처음에는 화가 났는데 이제는 (교육부를) 포기해서 냉소밖에 안 나오고…방향이 안 잡혀 선행학습과 고입에 올인(다걸기)하고 있어요.” 세종시에 거주하는 중3학부모 임선화(46)씨 얘기다.

입시 전문가들도 내신관리, 비(非)교과활동, 수능공부, 논술까지 챙기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조언한다. 수험생 입장에서는 다 잘해야 하는 것이다. 이영덕 대성학력개발연구소장은 “수시모집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고교 1학년부터 내신을 관리하면서, 수능 공부도 꾸준히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필립 대치동 김필립수학학원 원장은 “대입전형이 복잡해질수록 사교육비 지출은 커질 수 밖에 없다”며 “현행 제도에서 수능 비중을 높이면 수능·내신·학생부종합·논술·컨설팅까지 사교육비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3일 서울 종로 한 입시전문학원에서 공부하는 수험생들.

이번 수능 모집비율 확대가 ‘점수로 한 줄 세우기 지양’이라는 문재인 정부 교육철학과 배치된다는 지적도 있다. 조근주 열정스토리 진로진학연구소장은 “줄 세우기, 암기·주입식 교육에서 탈피하겠다는 방향성이 흔들린다”면서 “이번 정부 교육정책은 ‘표심’에 휩쓸린 포퓰리즘 성향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