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경 시인

내가 근무하던 출판사에서는 금요일마다 술자리가 있었다. 집필한 저자들, 책이 나오는 데 기여한 사람들이 모여 맥주를 한잔하는 조촐한 모임이었다. 조은 시인을 만난 것은 그 시절 그 자리 중 하나에서였다. 말이 별로 없는, 수줍음 가득한 웃음이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자리가 끝날 때쯤, 쉽게 일어나질 못하고 무슨 말인가를 망설이는 시인에게 다가갔다. 필요한 것이 있느냐는 내 물음에 부끄러운 듯 망설이던 시인은, 남은 안주를 좀 싸갈 수 있을까요, 하고 물어보았다. 보기 좋게 남은 것이 아니기에 의아해하는 내게 시인은 덧붙였다. 집에 혼자 있는 강아지에게 주고 싶어서요. 술자리에서도 집에 혼자 있는 강아지를 생각하는 시인이, 그 쉬운 말을 어렵게 꺼내는 시인이 좋았다. 얼른 남은 안주를 한 묶음에 정리해 드렸다. 어려운 일도 아닌데, 시인은 헤어질 때까지, 심지어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만난 자리에서도 그 일을 기억하고 감사를 전했다. 그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되고 나서 내게는 작은 습관이 하나 생겼다. 그를 만날 때마다 집으로 돌아와 그의 시집을 읽는 것이다. 그렇게 하고 나면 전해 받은 온기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지속되는 기분이 되었다.

조은 시인의 새 시집 '옆 발자국'(문학과지성사)이 출간되었다. 무려 8년 만이다. '옆 발자국'을 채우고 있는 언어들은 소소하다. 한껏 치장한 수식들도 없고, 놀라운 깨달음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눈길 위에 한 발짝 한 발짝 남기는 발자국처럼 천천하고 분명하다. 앞만 보며 걷는 걸음이 아니다. "혹한의 날씨" "눈 내린 골목 고양이 발자국들"을 위해 "털장갑 같은 김이 오르는" "누가 막 놓고 간 물그릇" 곁 옆 발자국이다. 나란히 가는 걸음이다('발자국 옆 발자국'). 곁을, 옆을 생각하고 위하는 마음이다. 그러하다고 혹한이 가시고 따뜻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한 걸음 더 가볼 용기를 주는 일은 아닌가. 걸음을 늦추고 마음을 내주어야 비로소 옆 발자국이 될 수 있는 게 아닌지.

그러나 여름은 어쩐지 '옆'과 어울리지 않는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폭염 중이라면 더 그렇다. 그래, 내가 당장 곁을 만들어 옆 발자국을 내지 못하는 것은 이 뜨거운 8월 탓이다. 이 더위가 가시고 나면. "세상이 발그레한 입술을/ 내게 갖다 대"는 다음 계절이 온다면…. 또 미루고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여름에게 참으로 미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