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옥한흠(1938~2010) 목사님은 저희 이중표 목사님의 삶에 대해 '잘 죽어서 잘 살았다'고 하셨습니다. 불편을 자처하면서 주님께 다가가려고 애썼던 분의 삶을 널리 알리고 싶었습니다."(이윤재 분당한신교회 목사)

"교단은 달라도 평소 이중표 목사님을 흠모해왔습니다. 저에게 집필을 맡겨주셔서 영광이었습니다. 막바지엔 밤샘 작업도 여러 날 했지요."(김성영 박사)

다음 주 발간되는 '죽어서도 행복한 사람'(쿰란출판사·작은 사진)은 거지(巨智) 이중표(1938~2005) 목사 평전이다. 이 목사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소속이었고, 필자인 김성영 박사는 성결교단 소속으로 성결대 총장까지 지낸 학자. 국내 개신교계에서 교단이 다른 목회자의 평전을 집필하는 것은 드문 일. 그것도 200여 권의 서적을 참고해 65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집필한 것은 '흠모'가 아니면 잘 설명되지 않는다.

이중표 목사는 일선 목회자로 활동하면서도 '별세(別世) 신앙'이란 자신만의 목회철학을 확립한 목사였다. 박사 학위 논문이 5편이나 나올 정도로 신학계에서도 주목하는 '별세 신앙'이란 성경 갈라디아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이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는 구절의 정신을 우리말로 옮긴 표현.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말한다.

이중표 목사는 분당한신교회 정문 앞에 수목장으로 잠들었다. 교회 20주년을 맞아 이 목사 평전을 펴낸 이윤재(오른쪽) 목사와 김성영 박사는 “혼돈과 침체를 겪고 있는 한국 교회에 필요한 정신을 이중표 목사님의 삶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북 부안 출신으로 한신대를 졸업한 후 고향에서 목회하다 서울로 올라와 1977년 잠원동 한신교회, 1998년 분당 한신교회를 설립해 대형 교회로 성장시킨 이 목사는 평생 '별세 신앙'을 실천했다. 교인들에겐 "날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어야 한다"고 설교했다. '편안한 행복'을 이야기하는 설교가 일반적이던 시절이다. 이윤재 목사는 "듣는 신자들이 참 불편했을 것"이라며 "이 목사님이나 신자들은 '불편해서 행복한 교회'를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별세 신앙'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 것은 더 어려웠다. 이 목사는 '양복도 두 벌 있으면 불편하다'고 할 정도로 청빈한 생활을 하면서 어려운 이웃을 돌봤다. 그동안 개척하거나 개척을 지원한 교회가 100여 개 이르고, 외국인 노동자와 불우 청소년을 돕는 목회자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1998년 8월 15일 분당한신교회 봉헌예배 땐 외국인 노동자 3000명을 초대해 겨울 방한복을 선물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목회는 따뜻했다. 고향에서 목회할 때는 자발적으로 농사일을 도왔고, 두레박 줄이 낡아 있으면 나일론 줄을 사서 바꿔 매어주면서 '마을에 필요한 목사'가 됐다. 처음 서울서 교회 개척하던 때는 아파트 초인종을 누르고 "편지 왔습니다"라고 했다. 주민이 "무슨 편지요?" 물으면 "하나님의 편지"라며 전도했다.

고교생 때 폐결핵을 앓을 정도로 약했던 건강은 점점 나빠졌다. 30대부터 담낭 질환으로 고생한 그는 6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평전에는 마지막 간병을 도왔던 신자에게 자신이 차던 손목시계를 선물한 일화가 나온다. 이 일화를 들은 이윤재 목사는 "그 정도가 아니라 옷장을 뒤져 몇 벌 없는 옷이지만 양복, 와이셔츠 그리고 넥타이까지 아끼던 후배들에게 다 나눠주셨다. 그것도 '사랑한다'는 손 편지와 함께"라고 말했다. 분당한신교회는 오는 12일 입당 20주년 기념예배에서 이 평전과 함께 논문집 '이중표와 별세'를 봉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