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삼성 스마트폰 사이에서 작은 차이를 찾는 일은 이제 별 의미가 없어요. 전 세계가 이미 차세대 전자기기 개발에 착수했죠. 스마트폰도 벌써 '낡은 혁신'이 된 거예요."

안종현(46) 연세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의 연구 성과와 인터뷰가 지난 7일 세계적 과학저널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 특집호에 실렸다. 그의 논문이 이 저널에 게재된 논문 가운데 '공학 특허기술에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으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그는 2010년 인공 나노물질 '그래핀(Graphene)'을 활용한 '플렉서블(flexible·유연한) 터치 패널'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스마트폰, TV 등 화면이 있는 전자기기를 종이처럼 접고 펴고 휠 수 있는 기술이다.

지난 26일 서울 연세대 신촌캠퍼스 공학관에서 반도체 성능 측정기를 들여다보는 안종현 교수. 그는 “신소재‘그래핀’을 활용해 피부에 부착만 하면 심전도, 당뇨 체크 등이 가능한 의료기기를 개발하고 있다”며“전자공학은 10년 후 인간 사회를 예측하고 바꿔놓는 학문”이라고 했다.

그래핀은 흑연에서 떼어낸 얇은 층으로, 전기 효율이 높아 각종 반도체와 디스플레이·태양전지 등을 만드는 데 쓰인다. 안 교수는 그래핀의 상업적 활용 가능성을 보여준 연구자로 세계적 인정을 받고 있다. 그는 "연구자로서 영광스럽지만, 휘어지는 화면도 이미 낡은 기술이 됐다"며 "차세대, 차차세대가 쓸 전자 소자를 개발하는 것이 내 소명"이라고 했다.

인천 출신인 그는 포항공대(현 포스텍)에서 학사와 석·박사를 마친 '국내파'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 유학은 꿈도 못 꿨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경제적으로 부족했던 유년 시절이 오히려 나를 '상상력 부자'로 만들어줬다"고 했다. "교과서 문제의 정답이 몽땅 적혀 있는 '전과' 한 권이 없었으니, 느리더라도 답 찾아가는 과정을 즐길 수밖에 없었어요. 정해진 답을 고르는 게 아니라, 답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과학자를 자연스레 꿈꾸게 됐죠."

안 교수의 연구는 일상에서 떠올린 엉뚱한 상상에서 출발할 때가 많다고 한다. 그의 연구팀이 최근 그래핀을 이용해 개발한 '생분해성 바이오센서'도 20년 전 안 교수가 당했던 교통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일정 시간 지나면 몸속에 넣어둔 의료 보조장치가 저절로 녹아 없어지는 기술이다.

"석사 학위를 막 끝낸 1998년 여름, 제가 26세 때 교통사고가 크게 나서 광대뼈가 으스러졌어요. 오른쪽 볼 안에 스테이플러 심 크기 철심 2개를 박았죠." 그는 볼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여전히 이 안에 모셔두고 있다"고 했다. "제거 수술을 못했어요. 의사가 '빼는 고통이 넣는 고통만큼 클 테니 그냥 살라'고 해서요."

그러다 2년 전 특정 신체 분비 물질이 3~4일 만에 반도체 물질을 녹이는 특성을 발견했다. "녹아 없어지는 의료기기 아이디어가 맴돌았어요. 다음 세대는 저처럼 얼굴에 철심 박은 채 살지 않아도 될 테니 뿌듯하죠." 이 연구도 지난달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게재됐다.

대학에서 기초학문을 가르치는 그는 시험문제를 낼 때 학생들이 학문을 실생활에 접목하도록 유도한다. 그가 학기 말 시험에 종종 내는 '이상한 문제'는 대학원생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A가 빙판길에 넘어졌다. 이번 학기에 배운 이론을 통해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지 서술하라'는 식이다.

"창의적으로 답안을 작성한 학생을 여태 못 봤어요. 정해진 답만 쫓아가는 공부가 십수 년간 몸에 밴 탓이죠. 엉뚱하더라도 재미있는 해결책을 보고 싶은데, 한국식 교육에선 아직 무리인 것 같아요." 그는 "현재 과학기술로 불가능하다고 해서 가능성 없다고 생각하는 건 금물"이라고 했다. "휘어지는 화면, 몸속에서 녹아버리는 철심도 다 그렇게 출발했죠. 엉뚱한 상상을 자꾸 해야 현실이 되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