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말 촛불 집회가 한창이던 무렵 탄핵 반대 집회 주변을 지나치게 되었다. 집회 참가자들이 든 태극기와 성조기의 물결 속에서 눈에 띄는 전단이 있었다. 거기에는 '군은 일어나라' '계엄령을 선포하라' '계엄령이 답'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당시 그 문구를 읽으면서 피식 웃고 지나갔다. 그런데 최근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 논란을 보면서 그때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문건 전체가 공개되면 시시비비가 보다 분명해지겠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으로도 문제점이 적지 않다.
국가의 질서가 통째로 무너질 때 군이 나서야 하는 건 불가피하지만, 경찰이 있음에도 군이 직접 개입해야 하는 상황은 매우 특별한 경우이다. 그럼에도 마치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을 기각하면 곧바로 군이 나서야 할 것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은 문건 작성의 정치적 의도에 의구심을 갖게 한다. 더욱이 계엄령 해제 요구를 막기 위해 야당 의원들을 구속 수사하는 방안까지 검토한 것을 보면, 계엄령 선포의 목적이 단지 질서 회복에 그치는 건 아닌 듯하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두고 '구시대적이고 불법적인 일탈 행위'라고 비판하면서 진상 규명을 지시한 것은 마땅한 일이다. 반면 이 사안에 대한 자유한국당이나 바른미래당의 반응은 궁색해 보인다. 야당으로서 대통령을 견제하고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특정 후보를 위해 댓글을 달고, 민간인을 사찰하고, 정치적으로 의심이 드는 문건을 만든 군부대의 활동을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야당은 대통령의 말보다 근본적으로 기무사 정치 개입의 문제점을 먼저 지적했어야 했다.
아예 이참에 한국의 보수 정치가 권위주의의 그늘로부터 벗어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민주화 이후 30년이 지났지만 보수는 여전히 민주화 이전의 시대에서 정체성을 찾는 것 같다. 보수 정치가 추앙하는 대상은 이승만, 박정희뿐이다. 물론 나라를 세우고 경제를 발전시킨 그들의 공로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평가를 받게 될 것이지만, 보수 정치가 이들에게만 매여 있는 한 민주화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예컨대, 독재자 박정희와 조국 근대화의 지도자 박정희는 서로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수 정치를 재건하고 싶다면 우리의 지난 정치사를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
1948년 이후 오랜 시간 동안 한국 정치는 보수 일색이었다. 이승만, 박정희만 보수가 아니라 이들에게 맞섰던 정치인들도 모두 보수였다. 1956년 정·부통령 선거 때 이승만에게 도전한 신익희는 임정 출신으로 환국 후에는 이승만과 함께 일했다. 1960년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였던 조병옥은 미 군정기에 오늘날의 경찰청장에 해당하는 경무국장을 지냈다. 1963년과 1967년 박정희에게 맞섰던 윤보선은 이승만 정부에서 서울시장과 상공부 장관을 역임했다. 그리고 김영삼과 김대중은 각각 '보수 정당' 한민당의 맥을 이은 민주당의 구파와 신파 출신이었다. 이들이 이승만과 박정희와 맞섰던 것은 이념적 지향점이 달라서가 아니라 독재에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이들이 서로 다투었던 원인은 민주화와 함께 오늘날에는 모두 해소됐다.
사실 제도권 주류 정치에서 세력으로서의 진보를 만들어 낸 이는 노무현 대통령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 자신이 보수 일색의 한국 정치에서 비주류였지만, 2002년 대선에서 지역주의를 대신할 새로운 균열 요소로 이념을 불러냈다. '반미가 뭐가 나쁘냐'는 그의 도발적인 발언은 그때까지 듣기 어려운 말이었고 여기에 진보 성향을 지닌 이른바 386세대와 20대가 호응했다. 그리고 2004년 탄핵 정국 와중에 실시된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돌풍이 불었고, 진보 성향의 초선 의원들이 대거 제도권 정치에 들어서면서 우리 정당 정치에서 보수-진보의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이런 정치적 환경의 변화로 인해 보수 정치는 보다 폭넓게 스스로를 정의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국가 건설과 근대화뿐만 아니라 민주화까지 보수 정치의 틀 속에 담아내야 하는 것이다. 한때 홍준표 전 대표가 이승만, 박정희의 사진과 함께 김영삼의 사진을 자유한국당 당사에 걸었다. 보수의 외연을 넓히려는 시도였겠지만, 그들과 함께 있는 김영삼의 사진은 무척 불편해 보였다. 그것은 아마도 보수 정치가 여전히 권위주의 체제에 정치적 일체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민주화를 위한 투쟁이라는 지난 우리 정치사에 대한 포용 없이 보수의 외연 확대는 쉽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