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중앙행정심판위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작업환경 측정보고서' 공개와 관련 "국가 핵심 기술과 삼성의 영업 비밀 등은 제외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고용노동부는 보고서를 통째로 공개하겠다고 했지만, "핵심 기술 유출을 막아달라"는 삼성의 주장이 상당 부분 받아들여진 것이다. 구체적인 비공개 범위가 고용부에 통보되는 2주쯤 뒤 반도체 기술 유출 가능성에 대한 최종 결론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산업 기밀을 경쟁국에 넘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보고서 전면 공개를 막은 것은 당연한 조치다. 전체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는 우리가 압도적 세계 1위를 지키는 유일한 품목이다.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외치며 한국의 기술력을 빼 가려 혈안이 돼 있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 믿기 어려울 정도다.

지난 2월 고용부는 법원 판결을 확대 해석해 "보고서를 모두 공개하라"고 결정했다. 보고서에는 공장 내 장비 배치, 사용 화학물질의 종류, 제품명 등 핵심 정보가 포함돼 있다. 1980년대 일본 업체에 갔던 연수생들이 발걸음으로 재는 등 온갖 방법으로 터득한 노하우다. 그런데도 보호하긴커녕 도리어 공개하려고 했다.

산업 기술 보호 책임을 진 산업부도 삼성이 공개를 막아달라고 법원에 소송을 내고 국민권익위에 하소연하는 동안 보고만 있었다. 그러다 여론 비판이 쏟아지자 뒤늦게 '국가 핵심 기술'이 포함돼 있다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부처 간 이견이 생겼을 때 조율을 담당해야 할 국무총리실도 손 놓고 있었다.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은 정부 내의 반(反)삼성 기류와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용부뿐 아니라 검찰·공정위·금융위 등 온갖 부처가 총동원돼 삼성 그룹을 압박하고 있다. 글로벌 1등 기업이 이렇게 자국 안에서 얻어맞는 나라는 또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 대기업에 투자와 고용 창출을 요구한다. 정부가 대기업을 적대시하는데 일자리와 경제 활력이 생겨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