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지난 21일 임종헌〈사진〉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서울 서초동 자택과 변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그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차장으로 근무하며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각종 문건을 작성하거나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는 인물이다. 검찰이 '양승태 법원행정처'의 '재판 거래 의혹'을 비롯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강제 수사에 착수한 것이다. 검찰이 지난달 21일 이 사건 고발인 조사에 착수한 지 한 달 만이다.

검찰의 이 사건 강제 수사는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애초 이 사안과 관련해 검찰에 직접 수사 의뢰를 하지는 않았지만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며 사실상 검찰에 수사의 문을 열어줬다. 검찰은 수사 초반에는 대법원에서 관련 자료를 임의 제출받는 방식을 택했다. 김 대법원장의 입장을 존중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검찰은 임 전 차장 등 법원행정처 간부·심의관들의 법인카드 사용 내역이나 이메일·메신저 기록 등을 포함해 컴퓨터 하드디스크까지 통째로 달라고 요구했다. 대법원이 이를 거부하자 자료 제출 범위를 둘러싼 줄다리기 끝에 지난 6일부터 대법원 청사 내에서 일부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문서를 확인하는 작업을 해왔다. 이를 두고 검찰 내에선 "자료 제출이 선별적으로 이뤄지는 이런 방식으로는 수사하기 어렵다"는 말이 계속 흘러나왔다. 강제 수사를 위한 명분 쌓기라는 해석이 많았는데 결국 그대로 된 것이다. 한 변호사는 "검찰이 법원행정처가 자료 제출에 소극적이라는 점을 계속 외부로 알리면서 강제 수사 명분을 세워오다 결국 그 카드를 꺼내든 것"이라며 "법원을 압박하기 위한 측면이 크다"고 했다.

검찰은 압수수색 하루 뒤인 22일엔 임 전 차장 사무실 여직원의 개인 가방에서 법원행정처 자료를 별도로 보관해 놓은 이동식 저장장치(USB)를 발견했다는 사실도 기자들에게 공개했다. 검찰이 압수 물품을 공개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 USB에는 임 전 차장이 행정처 시절 작성하거나 보고받은 문건 다수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의 경우라면 이런 자료들을 근거로 은밀하게 수사하면 되는데 이를 외부에 공개한 것이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법원을 향해 '당신들이 자료를 안 내놓아도 우리가 수사할 수 있으니 알아서 내놓으라'고 압박한 것"이라며 "검찰이 앞으로 강제 수사의 범위를 넓히며 법원을 계속 몰아붙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앞으로 검찰이 법원행정처를 압수수색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검찰은 이번에 임 전 차장 외에도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등에 대해서도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이 기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 내부에서는 "우리가 너무 순진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충수'에 걸렸다"는 반응이 나온다. 법원으로선 검찰이 대법원을 압수수색하는 것을 그대로 보고 있기 어렵지만,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하면 '제 식구 감싸기'를 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앞서 이 사안을 조사했던 대법원 특별조사단은 "재판 거래 시도 문건은 있었지만 실행되지 않아 형사처벌할 사안은 아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김명수 대법원장이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하면서 상황이 여기까지 왔다.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대법원장 입장에선 검찰이 적정하게 수사해서 '재판 거래'는 없었다고 선언해주길 바랐는지 모르지만 너무 순진한 판단"이라며 "결국 검찰 손아귀에 법원이 잡히는 상황이 초래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