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철동에 조용히 둥지 튼 샤오바오 우육면 매장 내부.

한국인은 면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 사랑이 오래되지는 않았다. 한반도에는 역사적으로 면을 뽑기 쉬운 밀가루가 많이 나지 않았다. 밀가루가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이 해방 이후다. 그 전에는 산간지방에서 나는 메밀로 뽑은 국수가 겨우 면식이라 불릴 만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반도에서 즐긴 면의 종류도 제한적이었다. 특히 밀가루 물성에 대한 노하우가 쌓여야 가능한 수타면은 일단 하는 집 자체가 드물뿐더러 그 수준 또한 높지 않았다. 맛집이라고 해서 가보면 면의 굵기가 제각각이고 탄성도 시원찮은 경우가 허다했다. 최근 서울 종각 한복판에 생긴 '샤오바오 우육면'은 수타면의 종류와 그 질에서 그간의 갈증을 풀 만하다.

한 집 건너 공실이 생긴 종각역 상권은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종각 상권을 지탱하던 학원 수강생들은 강남으로, 혹은 인터넷에 뺏겨 버렸다. 관철동 너머 공평동에 크게 생긴 오피스 빌딩은 직장인 수요까지 흡수해버렸다. 관광객들과 젊은이들은 요즘 뜨는 익선동에 가서 시간을 보낸다. 관철동에 남은 것은 철 지난 노래방과 낮에 문을 열지 않는 주점들뿐이다.

'샤오바오 우육면'은 여러 악조건을 실력으로 돌파하는 형국이다. 이 집의 대표 메뉴는 상호처럼 우육면이다. 우육면 중에서도 육수 색이 어둡고 면이 하얀 대만식 우육면이 아닌, 육수가 맑고 면이 노란 대륙의 란저우식 우육면이다. 란저우는 어디일까? 중국 사람들도 란저우가 어디 있는지 쉽게 말하지 못한다. 실크로드의 중심지였던 중국 내륙 공업도시, 평균 온도 8도, 해발 1500m 고원에 있는 란저우는 그 도시 자체보다 우육면으로 더욱 유명하다. 소뼈, 소고기, 무, 각종 향신료로 맛을 낸 육수, 취향에 따라 골라 먹을 수 있는 수타면, 매콤하게 곁들이는 고추기름이 란저우식 우육면의 핵심이다.

설명은 이 정도로 하고 이제 맛을 볼 차례다. 당연히 가장 먼저 맛을 보아야 할 음식은 우육면이다. 메뉴를 보니 여덟 종류나 되는 면을 고르는 것이 첫째였다. ㎜ 단위로 수타면을 구분해 놓은 것을 보니 호기심부터 일었다. 모양도 다양했다. 면의 단면은 세모, 네모 등으로 선택할 수 있었다. 반죽 모양 그대로 면을 뽑는 것이 기술이라고 했다.

샤오바오 우육면의 대표 메뉴인 육수가 맑고 면이 노란 란저우식 우육면(앞)과 소고기볶음면(위), 마라오이(오른쪽). 하나같이 과학처럼 맛이 명쾌하다.

젊은 남성이 좋아한다는 지름 5㎜ 면에 우육면 맑은탕을 주문했다. 테이블에 놓인 고추기름을 따로 넣어 맛을 볼 양이었다. 주문이 들어가자 큰 유리창이 놓인 주방에서 주인장이 면 반죽을 조물거리기 시작했다. 면을 큰 도마 바닥에 힘껏 치고 면 줄기를 휘감는 묘기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작은 면 반죽을 몇 번 늘이고 접더니 3분도 채 되지 않아 우육면 한 그릇이 나왔다. 육수는 맑았다. 그 위로 김을 따라 올라오는 향기에서 중국 특유의 오향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모금을 들이켰다. 계피와 회향을 비롯한 중국 향신료의 흔적보다는 무에서 나온 단맛이 더 강했다. 명쾌한 수학 공식처럼 말끔하고 잡맛이 없었다.

육수가 우육탕의 정신이라면 면은 단련된 몸이었다. 면을 한 젓가락 들어 올릴 때마다 낚싯줄에 물고기가 걸린 것처럼 저항감이 느껴졌다. 육수에서 건져낸 면을 입속에 집어넣고 이로 자르고 으깼다. 수타면에서 흔히 생기기 쉬운 쓴맛이 없었다. 대신 잘 익은 옥수수를 씹는 듯 달큰한 여운이 남았다. 반쯤 먹고 고추기름 한 숟가락을 육수에 넣었다.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주고 나니 다른 음식이 앞에 있었다. 휘발성 마라(麻辣)향이 혀와 목구멍을 점령했다.

국물 없이 자작한 소고기볶음면은 조금 더 전투적인 매운맛이었다. 하지만 매운맛이 쾌감을 넘어 아픔에 가깝지는 않았다. 견뎌야 하는 종류가 아니라 즐겁고 향기로운 유희였다. 곁들인 감자채볶음에서는 마라의 강도는 약해졌고 대신 향은 더 그윽해졌다. 감자채의 아삭한 식감도 식감이었지만 무엇보다 요리에 따라 매운맛조차도 액셀 밟고 기어를 넣듯 강약과 맥락을 조절하는 주인장 솜씨가 놀라웠다. 면을 두께와 모양에 따라 종류를 나눴듯 매운맛도 그 강도에 따라 구분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소고기볶음면은 5단, 매운우육면은 4단, 마라수육은 3단, 마라오이는 2단, 감자채볶음은 1단 기어 정도가 아니었을까? 더불어 식사 내내 코너를 날렵하게 도는 스포츠카처럼 음식은 주문을 넣자마자 나왔고 맛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날이 뜨거워 길 밖에 나가기 두려운 날이라도, 경기가 가라앉고 상권이 어렵더라도, 이 집에 들른 사람들은 붉게 물든 국물을 마시고 생물처럼 몸부림치는 수타면을 씹을 것이다. 수학 공식에는 예외가 없고 잘되는 식당은 핑계가 없는 법이다. 모두 과학 같은 이 집 음식을 두고 하는 말이다.

샤오바오우육면: 우육면(8500원), 소고기볶음면(1만1000원), 감자채무침(4500원), 마라오이(4500원), 마라수육(2만3000원). (02)723-77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