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의 한 사립고등학교에서 3학년 기말고사 시험지가 유출됐다는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이 “중간고사 때도 시험지를 빼돌린 적이 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광주 서부경찰서는 “기말고사 시험문제를 유출한 혐의(위계에 의한 업무방해)로 불구속 입건된 D고등학교 행정실장 김모(58)씨가 중간고사 때도 시험지를 학부모 신모(여·52)씨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했다”고 16일 밝혔다. 학부모 신씨도 이를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학교 측에서 시험지 관리에 소홀했다는 정황도 포착했다. 경찰에 따르면 시험지를 빼돌린 김씨는 교내 인쇄실 내부에 방치된 시험지 원안을 복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시험지 복사를 담당한 학교 직원이 업무를 잠시 중단하면서, 인쇄용지와 함께 원안을 방치한 것이다. 시험지 원본은 금고 등 별도의 보안시설에 보관해야 한다.

경찰은 중간고사 시험지 유출도 학교 측 관리 소홀을 틈타 원안을 복사하고 빼돌리는 방식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김씨가 시험지 원안을 유출하지 않고 복사본만 빼돌렸기 때문에 경찰은 절도와 업무방해 중 어떤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지 검토하고 있다. 시험지 유출 자체는 ‘업무방해’에 해당하지만, 유출된 시험지가 원본이라면 ‘절도죄’도 성립한다.

‘광주 고3 시험지 유출 사건’은 지난 6∼10일 기말고사를 치르는 과정에서 학부모 신씨의 아들이 급우들에게 미리 알려준 일부 문제가 실제로 출제되자 학생들이 의구심을 품고 학교에 신고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이후 학교 자체 조사에서 이들의 범행이 드러났다.

수사가 확대되면서 시험지 유출 사건은 의혹이 더 커졌다. 행정실장 김씨와 학부모 신씨는 당초 “전체 9개 과목 중 5개 과목의 기말고사 시험지를 유출했다”고 했지만, 광주시교육청이 감사하는 과정에서 전 과목(이과 9개, 문과 10개)이 유출된 정황이 드러났다. 학교에 설치된 방범카메라(CCTV)에도 김씨가 인쇄실에서 시험지 여러 장을 밖으로 들고 나가는 장면이 확인됐다.

D고등학교는 당초 기말고사 전(全)과목 재시험을 치르기로 했지만, 이날 밤 경찰 조사에서 중간고사 시험지까지 유출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재시험 범위를 두고 다시 검토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험지 유출을 시인한 행정실장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학부모 사정이 딱해 보여서 어쩔 수 없이 도와줬다”면서 “시험지 유출을 대가로 금품을 따로 받지는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행정실장 김씨와 학부모 신씨는 현재 출국금지 상태다. 유출된 시험지로 중간·기말고사를 치른 신씨 아들은 자퇴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