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꼭지 고쳐달라" 신고에 울며 겨자 먹기 출동
고객치안만족도 조사에 일선 경찰 '부글부글'
"인권경찰 되려면 감내해야" VS "경찰이 AS센터냐"

"집에 물이 안 나옵니다."
최근 경기도 고양시 경찰 지구대에 이 같은 신고가 들어왔다. "그럼 수리업체를 부르셔야죠." 전화를 받은 김모(31) 경장이 타일렀다. 민원인은 막무가내였다. "지금 통화내용을 녹음하고 있어. 당장 (수도꼭지)고치러 오지 않으면 상급자에게 민원 넣을 거야!"

김 경장은 “상급자 민원”이라는 말에 얼어붙었다. 경기경찰청이 ‘고객치안만족도 조사’를 하고 있는데, 김 경장이 소속된 경찰서가 이미 낮은 점수로 문책을 당한 것이다. ‘조직’에 누가 될까봐 결국 김 경장은 민원인의 집으로 ‘출동’해 온종일 수도꼭지와 씨름했다. “수도꼭지 고치는 시간에 위급한 112신고가 들어올 수도 있잖아요.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치안만족도 조사가 겁나 ‘황당 민원’에 제대로 거절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김 경장 얘기다.

112종합상황실 경찰이 신고 전화를 받고 있다.

경기도 용인시 한 경찰서 경비교통과 장모(40) 경사는 고객치안만족도 조사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지난해 9월 견인차 불법주정차 신고를 한 민원인에게 “경찰은 불법주차 스티커만 발부하지, 강제집행(견인)은 지방자치단체에서 하도록 되어 있다”고 설명한 것이 화근이었다. 민원인이 “경찰과 견인업체가 유착관계”라고 신고하자 경기경찰청은 장 경사에게 민원 응대의 책임을 물었다.

“지역 주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경기경찰청의 고객치안만족도 조사를 두고, 일선 경찰관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이중삼중의 철저한 ‘치안만족도 확인’으로 경찰들이 ‘악성민원인’ 눈치까지 보게 된 것이다. 일선경찰들 사이에서는 “윗사람들의 전형적인 탁상행정” “경찰이 AS센터 직원인가”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피의자가 경찰에 "나쁜 점수 주겠다" 협박
경기경찰청(경기북부·경기남부)이 고객치안만족도 조사를 시작한 것은 2011년부터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민원인에게 담당 경찰관이 만족스러웠는지를 묻는 전수조사 방식으로 바뀌었다. 경기지방청 차원에서 민원인으로 가장, 불시에 전화응대 서비스를 점검하기도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경기청 뿐만 아니라 경찰청에서도 별도로 카카오톡을 활용한 치안만족도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치안수요자인 지역주민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업무방식을 개선하자는 취지다. 고객치안만족도 조사 결과는 ‘경찰서치안종합성과 평가’에 10% 반영된다.

서울 영등포경찰서 중앙지구대로 붙잡혀온 중 년 남자가 경찰관 면전에서 다시 피해자를 때리려 하자 경찰관이 말리고 있다.

일선 경찰들은 설문조사가 인사 평가에 포함되기 때문에 공권력 무시를 당해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실제 입건된 피의자가 조사과정에서 반말·욕설 들의 태도를 보일 때 강하게 대응하면 “민원 넣겠다” “나쁜 점수 주겠다”는 대답이 돌아온다는 것이다. 지난 5월 광주광역시 집단폭행 당시 경찰의 무기력한 대응이 도마에 올랐을 때도, 경찰들 사이에서는 “민원에 대한 두려움때문에 공권력 행사가 망설여진다”는 말이 나왔다.

“주폭(酒暴), 절도범 같은 범죄 피의자가 경찰 서비스에 만족한다고 하겠습니까. 경찰도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직업인데, 무리한 친절까지 제공하라는 것은 너무 지나칩니다. 경찰이 서비스직은 아니지 않습니까.” 경기지역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관 얘기다.

경기지방청은 이 같은 불만에 대해 “오해가 있다”는 입장이다. 경기북부경찰청 관계자는 “고객치안만족도 조사는 경찰서 ‘조직’에 대한 평가로 반영되지만 일선 경찰서·지구대에서 근무하는 ‘개인’ 인사평가에는 쓰이지 않는다며 “또 범죄 가해자, 반복적인 악성민원인의 고객치안만족도 평가는 걸러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청 측은 “수도꼭지 수리 같은 ‘황당 민원’은 치안만족도 평가 대상이 아니다”고 밝혔다.

◇ "경찰 불친절 여전…인권 경찰되려면 감내해야 할 부분"
그러나 민원인의 무리한 요구를 만족시켜 주지 않을 경우, 일선 경찰관들이 불이익 받을 수 있다는 문제가 여전히 남는다.

지난 10일 현직 경찰관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집회소음이 시끄러우니 해결해달라’는 민원이 들어와서, 데시벨(㏈) 측정해보니 기준치 이하였다”면서 “이런 경우에 민원인에게 아무리 좋게 설명해도 ‘시끄러우니까 처리해달라’면서 화를 낸다. 자기 편 안 들어준다고 만족도 평가나쁘게 주면 대처할 방법이 없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 커뮤니티에는 “고객치안만족도 평가로 등수를 매기고, 불친절 결과가 나온 직원을 색출한 경찰서도 있다” “어떤 경찰서장은 만족도가 낮은 팀장들에게 대책보고를 시켰다”는 ‘제보’도 잇따른다.

반면 강도 높은 정책으로 경찰의 민원서비스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인터넷 사기사건에 휘말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찰 문턱을 넘었다는 직장인 윤모(33)씨가 그런 경우다. 이후 사건 진행상황이 궁금해진 윤씨가 경찰에 전화를 걸어 묻자 “그걸 왜 나한테 묻느냐”는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윤씨는 “감정이 상해 언성을 높이자 이번에는 담당 경찰관이 ‘지금부터 녹음할 테니 더욱 시원하게 욕 해보라’고 했다”며 “법 절차에 익숙하지 않아서 이것저것 물어볼 수도 있는데, 귀찮아하는 태도에 실망했다”고 말했다.

경찰의 '고객 치안만족도' 설문조사 때문에 내부 불만이 커지고 있다.

고객치안만족도 평가정책을 지지하는 경찰 간부는 “인권경찰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감내해야 할 부분”이라면서 “민원인을 가장해서 일선 경찰서에 전화해보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