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현지 시각) 열린 세계 최고 권위의 테니스 대회인 윔블던 남자 단식 8강전.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스위스·세계 2위)의 운동화엔 숫자 8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메이저 대회에서 20승을 거둔 페더러가 윔블던에서 수집한 우승 트로피 숫자다.

1981년생으로 테니스 선수로선 환갑을 넘긴 페더러는 윔블던에 집중하기 위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프랑스 오픈을 포함해 클레이 코트 시즌을 통째로 건너뛰었다. 하지만 지난해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과 달리 올해는 8강전에서 짐을 싸게 됐다. 페더러는 이날 케빈 앤더슨(남아공·8위)에게 2대3(6-2 7-6 5-7 4-6 11-13)으로 역전패를 당했다.

테니스 팬들에겐 익숙하지 않은, ‘테니스 황제’의 이른 퇴장이었다. 로저 페더러(가운데)가 11일 윔블던 남자 단식 8강전에서 케빈 앤더슨(오른쪽)에게 패한 후 고개를 숙이며 코트를 떠나는 모습.

이전 경기까지 윔블던에서 32세트 연속 승리를 거둔 페더러는 앤더슨을 상대로 첫 두 세트를 따내며 손쉽게 4강에 진출하는 듯했다. 하지만 3세트에서 매치 포인트까지 가고도 경기를 내주면서 상대의 기를 살려줬다. 203㎝에 달하는 장신 앤더슨은 최대 시속 215㎞의 강서브를 쏘며 페더러를 흔들어 3, 4세트를 따냈다. 윔블던은 마지막 5세트에서 타이브레이크 없이 끝장 승부를 벌여야 한다. 페더러는 5세트 게임스코어 11-11에서 이날 경기 첫 더블폴트를 범하는 등 서브 게임을 내주며 무너졌다. 페더러는 "최악의 기분이다. 회복하는 데 얼마나 오래 걸릴지 지금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페더러를 꺾은 앤더슨은 존 이스너(미국·10위)와 4강전을 치른다. 세계 1위 라파엘 나달(스페인)은 전 세계 1위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21위)와 결승 티켓을 놓고 4강 대결을 펼친다. 나달과 조코비치는 윔블던에서 2회, 3회씩 우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