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와이파이가 밥보다 더 중요"
스마트폰으로 저가항공 찾아 제주 입국
'페북 라이브'로 "어촌에는 가지 말아라"
"브로커 있지만...페북·메신저가 브로커"

지난 27일 오후 7시 제주도 삼도1동 OO관광호텔 1층, 서너 명의 난민들이 스마트폰을 머리 위로 높이 들고 기도하듯 “민 파들릭(제발)”을 외웠다. 난민 신청 인터뷰를 앞둔 예멘인 한 명이 기자에게 물었다. “지금 와이파이가 안돼서 메시지를 못 보고 있는데, 29일(금요일) 한국 정부에서 난민 관련 정책을 발표를 한다는 게 사실인가요?” 온종일 취재를 다닌 기자는 당황스러웠다. “처음 듣는 얘기인데요...” 법무부 출입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오후 2시 출입기자들에게 발표를 예고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1시간 후, 호텔 1층 흡연실에 모여있던 약 20여 명의 난민들이 “모레 한국 정부가 대책을 발표한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쉼터에서 만난 난민들은 집, 밥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와이파이’, 그리고 스마트폰을 충전할 ‘전기 콘센트’를 꼽았다. 난민들에게 ‘정보’는 곧 혜택이며, 기회였다.

지난 27일 예멘 난민 신청자들이 호텔 1층 쉼터 인근에 모여 정보를 나누는 모습. 궁금한 점을 질문하면 서로 답을 해 주고 있다.

◇'보트피플은 옛말' 비행기 타는 난민
21세기 난민은 '보트피플'과는 거리가 멀다. 제주에서 만난 30여 명의 난민들은 "보트를 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기자가 만난 난민 중 보트를 타고 탈출한 사람은 예멘인 알드미레(27)씨 한 명뿐이었다. 그는 예멘에서 배를 타고 지부티로 탈출했다. 그는 물에 젖었다가 마른 여권을 보여주며 "배를 타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배로 탈출하다가 많은 사람들이 죽고 물에 빠지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한 예멘인의 구겨진 여권. 예멘에서 출발해 배와 항공기를 이용해 이동해왔다.

예멘인들은 대부분 스마트폰으로 항공권을 조회해 비행기로 이동했다. 비행기를 3번 환승해 제주에 온 난민도 있었다. 마하무드(23)씨는 “공항이 폐쇄됐다 다시 열었다 반복하는데, 한 달 간 기다려 비행기를 타고 수단으로 탈출했다”며 “이후 수단에서 말레이시아까지 비행기를 탔고, 거기서 2년을 일해 2000달러를 모았는데 300달러 짜리 저가항공 표가 떠서 제주도에 오게 됐다”고 했다.

예멘을 떠난 난민들은 예멘→수단 예멘→사우디아라비아 예멘→지부티 등 크게 3가지의 이동 경로를 택한다. 하지만 이후 말레이시아→제주의 경로를 택한다. 말레이시아는 예멘인에게 비자 없이 90일간 체류할 수 있는 곳이다. 같은 이슬람국가라서 그렇다고 했다. 이들은 말레이시아를 중간 기착지로 삼아, 무비자입국이 가능한 제주를 최종 목적지로 삼는 것이다.

예멘인 오바마씨는 “이미 제주에 입국한 사람들이 ‘900달러 루트’라며 900달러에 예멘에서 제주까지 오는 경로와 교통편을 올려놓은 것도 있다”고 했다. 예멘에서 수단과 사우디아라비아까지 가는 데 약 300달러, 다시 말레이시아까지 이동하는 데 비용이 350~400달러, 말레이시아에서 제주까지는 약 300달러가 든다고 했다. 예멘에서 제주까지 900달러면 된다는 이야기다.

그래픽=김란희

◇밥보다 중요한 건 와이파이…정보로 무장한 예멘 난민
예멘 난민들은 삼성전자 갤럭시, 애플 아이폰, LG전자, 화웨이 등 다양한 메이커의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다. 예멘인들에게도 스마트폰은 세상을 헤쳐가는 무기이자 밥벌이 수단이다.

예멘인들은 이미 제주도에 오기 전부터 페이스북과 왓츠앱, 카카오톡, 텔레그램 등을 통해 각종 정보를 얻어왔다. 한 예멘인은 “제주의 무사증(무비자) 제도와 난민 신청 방법을 페이스북 그룹을 통해 배웠다”며 “항공권 구입처와 숙소 추천까지도 있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호텔 매니저는 “방값이 4만원인데, 예멘인에게 절반만 받으면서 조식과 간식도 제공해 왔다”며 “이 소식을 어떻게 알았는지, 예멘인들이 150명까지 몰렸다”고 설명했다.

한 예멘인은 제주도 무사증 제도와 한국의 난민 제도를 어떻게 알았는지 물어보자, 페이스북 등 SNS로 배웠다고 답했다.

실제 예멘 난민들은 페이스북에서 ‘Yemen Refugees in Jeju’라는 그룹을 만들어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다. 이 그룹에는 약 1600여 명의 난민이 가입됐다.

“제주도에서 준 일자리가 힘들다, 벌써 그만 둔 사람이 있다”, “공장이 있는 서울에 가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같은 이야기들이 올라와 있었다. 한국 뉴스를 아랍어로 번역해놓은 글도 있다. 이 페이스북 그룹은 한국 네티즌이 존재를 알게 되자, 비공개로 전환해 현재는 검색되지 않는다.

제주에 들어온 예멘 난민들도 비공개 페이스북 그룹(the yemenis refugees in jeju island-korea)을 만들었다. 한 난민의 초대로 이 페이스북 그룹에 가입해봤다. 회원은 173명 수준. 할랄푸드 등 제주 생활과 관련된 내용이 주로 있었다. 선원으로 취업한 한 예멘인은 어구(漁具)를 손질하는 모습을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하면서, 아픈 팔을 보여주며 “손목이 아프다” “너무 힘들다” “아이구 아이구” 같은 경험담을 들려주고 있었다. 생생한 정보가 공유된 탓인지, 난민들은 ‘어업근로’를 기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예멘인이 스마트폰 블루투스 기능을 이용해 기자에게 전송한 예멘 현지 한 대학의 모습. 포탄을 맞아 학교가 폐허로 변했다.

한 예멘청년이 스마트폰을 꺼내 기자에게 자신이 정보를 얻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보여주려고 하자, 옆에 있던 예멘인이 “시큐리티(보안)”라며 눈치를 줬다. 다른 예멘인은 예멘 현지 상황을 묻자 “포탄으로 부서진 학교 사진을 보내주겠다”며 스마트폰 블루투스 기능으로 기자에게 파일을 보내줬다.

"우리는 젊어서 페이스북으로 다 안다"
예멘 난민이 일시에 제주로 몰리자, '난민 브로커'가 개입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 예멘인들의 제주 입국 과정과 난민 신청 등 이후 일련의 행동은 마치 누가 교육이라도 한 듯 비슷하기 때문이다.

예멘 난민들은 ①난민 전문 브로커가 개입하는 경우도 있지만 ②스마트폰으로도 충분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알바다니(31)씨는 “우리 난민을 두고 ‘브로커가 있다’, ‘가짜난민이다’ 등 한국인 사이에서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을 알고 있다”며 “페이스북과 왓츠앱 등 소셜미디어가 우리에게는 브로커다. 솔직히 브로커를 쓸 만큼 돈이 없다”고 했다.

취재차 제주를 방문한 한 말레이시아 기자는 “지난 5월 10일 말레이시아에 친기업 성향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많이 받았던 전 총리가 물러나고 새로운 총리가 뽑혔다”며 “정치적 환경이 바뀌어 불안감을 느낀 예멘 난민들이 5월에 집중적으로 제주도로 넘어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스마트폰으로 무장한 이들은 정보력과 상황분석력이 상당 수준이다.

그래픽=이민경

"난민의 스마트 폰 사용은 자연스러운 것"
"스마트폰 사용하는 난민은 난민이 아니라 불법입국자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관습적인 '난민'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영어도 쓰고 스마트폰을 사용할 만큼 IT에 대해서도 잘 알고 경제력을 갖췄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라며 "6·25 시절 전쟁을 피해 미국과 일본으로 피난 혹은 유학 갔던 사람들만 봐도 어느 정도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이어 "단순히 외형적으로 난민 같지 않아 보인다는 이유로 그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는 난민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했다.

*본지는 예멘 난민을 실명으로 인터뷰하고 출입국 기록도 확인했지만,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의 난민 보호 권고에 따라 이름은 가명으로, 사진은 모자이크 처리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