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한 이인규〈사진〉 전 대검 중앙수사부장이 25일 기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수사 당시 원세훈 국정원장이 임채진 검찰총장에게 전화해 '노 전 대통령의 시계 수수 사실을 언론에 흘려 망신 주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다가 거절을 당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 수사가 진행 중이던 2009년 한 방송사는 "노 전 대통령 부인인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받은 명품 피아제 손목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보도했다. 이후 이 전 부장은 보도의 배후로 지목됐는데 자신은 무관하다고 부인한 것이다. 그는 작년 11월 몇몇 언론이 그가 미국으로 도피했다는 보도를 했을 때도 기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2009년 4월 국정원 전 직원이 찾아와 원 전 원장 뜻이라며 '시계 수수 사실을 언론에 흘리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의 말을 해 질책하고 돌려보냈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 일부 언론이 미국에 머물고 있는 그의 근황을 보도하자 재차 관련 의혹을 부인한 것이다.

그는 2009년 보도가 나갈 당시 원 전 원장 고교 후배인 김영호 당시 행안부 차관 등과 저녁 식사 중이었다고 했다. 그는 "(국정원 간부들의 제안을)거절하고 야단을 쳐서 돌려보냈는데 결국 (원 전 원장이)이런 파렴치한 짓을 꾸몄다. 원세훈 원장에게 '내가 정말 X자식이라고 하더라'고 전해달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당시 방송 보도에 국정원이 개입한 것을 확인했다고 했다.

그는 검찰 수사 내용도 간략히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박연차 회장은 검찰에서 '2006년 9월쯤 노 전 대통령 회갑을 맞아 피아제 남녀 손목시계 한 세트를 2억원에 구입해 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를 통해 전달했고, 2007년 봄쯤 청와대 관저에서 노 전 대통령 부부와 만찬을 할 때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감사 인사를 받았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은 2009년 4월 30일 검찰 조사에서 '권양숙 여사가 시계 세트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시계 수수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후에 알았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에게 시계를 증거물로 제출해 달라고 했으나 노 전 대통령은 '언론에 시계 수수 사실이 보도되고 난 후에 권 여사가 밖에 내다버렸다'고 답변하며 제출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와 같은 조사 내용은 모두 녹화됐고 조서로 작성됐다. 그 조서는 영구 보존 문서로 검찰에 남아 있다"고 했다.

그는 "만일 제가 잘못한 점이 있어 조사 요청이 오면 언제든지 귀국해 조사를 받겠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검찰은 현재 이 사건을 수사하지 않고 있다. 국정원 개혁위는 작년 말 "국정원 간부들이 이 전 부장을 만나 시계 수수 사실을 언론에 흘려 망신을 주는 데 활용해 달라고 말한 것은 확인됐지만, 언론 플레이를 구체적으로 지시하거나 실행한 사실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고발이나 수사 의뢰를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