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각수 전 주일대사가 21일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21일 “가을이면 비핵화와 관련한 북한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신 전 대사는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과의 인터뷰에서 “일단 미국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북한측이 추가 교섭을 통해 로드맵이 만들어지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마냥 부정적으로 평가할 필요는 없지만, 대남 위협을 얼마나 줄였는지에 따라 안보와 평화를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며 “말과 분위기로만 평가하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신 전 대사는 “북핵 문제는 수십년간 끌어오면서 엉킨 대로 엉킨 문제”라며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끊는 것마냥 쾌도난마식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엉킨 문제를 억지로 칼로 자르려다 보면 오히려 극단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신 전 대사는 “‘트럼프 트릭’이랄까, 희망적 관측으로 인해 분위기가 많이 휩쓸렸다. 트럼프 대통령 한 명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좌우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냉정한 판단보다는 분위기에 휩쓸린 경향이 짙어졌는데, 낙관적 관측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고 했다.

그러면서 “6·12 미북합의는 제네바 합의, 9·19 공동선언보다 후퇴한 절반의 성공”이라며 “(이렇게) 시간을 끌면 북한은 사실상 핵무장 국가가 되고, 미국은 자국에 실질적 안보 위협이 되는 부분만 북한과 타협할 수 있다”고 했다. 신 전 대사는 최근 연합훈련 중단과 관련해 “한미동맹이나 주한미군에 관한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나 기자회견 등을 통해 (일방적으로) 나오게 되는 현상은 상당히 우려된다”며 “우리 청와대나 국방부가 이것을 알았는냐는 점을 되짚어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우리 정부가 연합훈련이 아닌 개별 군사 훈련 중단을 검토하는 것에 대해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도 햇별정책을 실시할 때 가장 앞세운 게 안보태세”라며 “말만 평화를 말하고 위협이 사라진 게 아닌데 우리의 대비태세를 없애는 건 문제”라고 했다.

신 전 대사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6·13 지방선거 승리를 계기로 ‘일부 전문가의 최근 협상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틀렸음을 국민들이 증명했다’는 취지로 발언한 데 대해서는 “일반 시민들은 평화라는 분위기를 바탕으로 상황을 평가하고, 현상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시각적으로 받아들인다”며 “전문가들은 배경이나 역사적 과정 등 여러가지를 고려하는데, 여론에 따라서 외교를 한다면 외교를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다음은 신 전 대사와의 인터뷰 전문.

신각수 전 주일대사가 21일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미북 정상회담 이후, 전반적인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나.

“‘트럼프 트릭’이랄까. 희망적 관측으로 인해 분위기가 많이 휩쓸린 듯하다. 북핵은 수십년간 끌어오면서 엉킨 대로 엉킨 문제인데, 그걸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끊는 것마냥 쾌도난마식으로 할 수 있겠느냐. 작년에 위기가 고조됐다가 평창 동계 올림픽을 계기로 위기에서 평화의 가능성이 보였다. 그런데 여기서 냉정한 판단보다는 분위기에 휩쓸린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낙관적 관측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미국에선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압박 전략이 먹혀서 북한이 이렇게 들어왔다면서 사안을 단순하게 보는 현상도 있는 것 같다.”

-북핵 문제는 고르디아스의 매듭처럼 단번에 끊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말인가.

“그렇게는 안 된다. 확 베어버릴 수 있는 문제도 아닐뿐더러, 엉킬 대로 엉킨 문제인데 억지로 칼로 자르려다 보면 오히려 극단적으로 갈 수 있다. 북핵 문제의 출발점이 무엇인지 살펴봐야 한다. 북핵 문제는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이 고도화돼서 사실상의 핵무장 완성 단계에 와있다는 사실에서부터 출발한다. 현재 핵위기는 3차 핵위기로 볼 수 있다. 1차 때는 아예 핵개발 초기 단계였고, 2차 때는 핵실험으로 핵개발이 어느 정도 진전됐지만 소위 핵무기의 소량화, 경량화, 다종화까진 나가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 모든 게 다 진전된 상황이다. 장거리 미사일 개발로 미국 본토 공격 능력까지 확보했다. 이런 북한을 상대해야 하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또 지난 두 번의 위기 때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라는 점도 기억하고 대응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핵 문제를 단칼에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얘기한다.

“이건 단계적으로 풀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단계적이란 북한이 말하는 ‘동시적 단계적 이행’과 다른 개념이다. 첫 번째는 큰 틀에서 합의하고, 그다음에 로드맵을 만들고, 그 로드맵을 이행해야 한다. 이행 대상이 되는 핵은 ‘과거핵’ ‘현재 내지는 미래핵’으로 분류할 수 있다. 과거핵이란 북한이 생산한 핵물질과 핵탄두, 거기에 미사일이 포함된다. 현재 핵이라면 생산시설, 미래핵이라면 인력과 핵 인프라를 포함한다. 문제는 당사자인 우리가 핵 교섭에 참여를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교섭에 참석하지 못하는 대신 우리의 동맹인 미국이 우리의 이익을 확보해주리란 기대 속에서 지켜보고 있다. 큰 틀에서의 합의와 로드맵을 만드는 과정에 우리의 이익이 반영돼야 하는데, 교섭 당사자인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우리의 이익은 부차적으로 여길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각료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북한이 대형 실험장 4곳을 폭파, 전면적 비핵화가 이미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고 외신이 전했다.

-로드맵에 담겨야 할 우리의 이익은 무엇인가?

“제일 먼저 과거핵부터 차단해야 한다. 미국은 과거핵 가운데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만 관심이 있다. 다음이 현재핵과 미래핵이다. 우리는 과거핵을 조기 수확하는 게 필요하다. 미북 정상이 만나 큰 틀에서 합의를 했으니 이제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북한에서 대표가 나와 로드맵 형성을 위한 후속 협상을 벌일 것이다. 로드맵 협상에서 첫 번째 우선순위는 비핵화의 ‘시한(Deadline)’이다. 시한이 반드시 명시돼야 한다. 미국의 핵 전문가인 지크프리드 해커 박사가 발표한 리포트에 따르면 핵폐기를 완료하는 데에 10~15년이 걸린다고 하더라. 시간이 걸리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핵탄두와 ICBM을 북한에서 반출해야 한다.”

-또 다른게 있다면 무엇인가?

“두 번째는 검증 제도다. 불시 검증이 가능해야 한다. 내가 보기엔 이 정도만 들어간다면 우리가 목표로 삼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달성하는 기초가 될 것이다. 문제는 실질적인 검증 절차에 들어갔을 때 북한이 거절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로드맵에선 실효적이고 침투적인 사찰제도를 만들어 포함해야 한다. 이 두 가지면 북한의 위장과 지연을 방지할 수 있다. 지연 전략은 데드라인으로, 위장은 검증으로 막으면 된다.”

-그러면 사찰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나.

“그게 이전과는 조금은 다를 것이다. 이전에 IAEA(국제원자력기구)는 핵무기가 만들어지기 전의 국가들을 사찰했다. 그런데 북한의 경우 만든 무기를 사찰하는 것이니, (IAEA가 아닌) 미국이 기존의 핵보유국과 함께 사찰을 할 가능성이 있다. P5(핵확산금지조약이 인정한 핵보유국)가 하거나 미국만 할 수도 있다. 핵무기 사찰에 한국이 들어갈 수 있을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우리도 핵 비확산 대상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실효적으로 북한의 기존 과거핵을 완전히 해체할 수 있는 그런 검증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그걸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미국이든 ‘P5’든, 언제든지 바로 사찰할 수 있는 검증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 하루 전날 바로 알리고 들어가 사찰할 수 있는 그런 검증 제도가 구축돼야 한다.”

-그런 사찰이나 과거핵 반출 등의 얘기가 미북 정상회담 합의문에 명시되길 기대했었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다.

“그렇게 됐으면 좋았을 텐데, (회담이 급박하게 진행 돼) 물리적·시간적으로 어려웠을 것으로 본다. 사찰 제도에 대해서 합의하기는 쉽지 않다. 2차 핵위기에서 3차 핵위기로 넘어가게 된 원인도 2005년 9·19 공동성명의 1단계에서 2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검증 프로토콜에 합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6자회담이 무산됐고, 3차 위기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검증 문제라는 건 북한으로선 어렵지만, 우리로선 꼭 해야 하는 핵심 이슈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가 21일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미북 정상회담 합의문 나왔을 때, 많은 전문가들은 9·19 성명보다 후퇴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때문에 대화 회의론이 자꾸 나온다.

“개인적으로 6·12 미북합의는 절반의 성공이라고 본다. 절반 밖에 아니지만, 후속합의를 통해서 보충할 수 있다는 점은 다행이다. 미북 간 신뢰 조성 측면에서는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하지만 과거의 2000년 ‘미북 공동코뮈니케’나, 그 이전의 제네바 합의, 9·19 공동선언 이런 것보다 비핵화에 관해서 불충분했고 후퇴한 측면이 있다. 그 점에 있어서는 우려되는 면이 있다. 미국이 최대한의 압박을 가해서 북한을 싱가포르로 끌어내 교섭을 했는데 이 정도의 합의만으로 그쳤다면, 후속협상은 정상 간 회담보다 낮은 단계인데 더 나은 결과가 나올 수 있겠느냐는 합리적인 의문이 나온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실망스럽고 부족하다. 결국은 끝의 시작이다. 끝이라는 것은 ‘북핵 폐기’다. 시작이라 건 교섭이 시작됐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끝이 시작됐다는 것인데, 그 끝이 불분명하다. 우리가 원했던 CVID나 시한설정, 이런 것이 합의문에 들어가지 않았고 후속협상에 다 넘겼기 때문에 오는 부족함도 있다.”

-이런 불충분한 합의 때문에 결국 북한이 시간만 끌게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간을 끌면 북한은 사실상의 핵무장 국가가 되고, 그렇게 되면 미국은 자국에 실질적 안보 위협이 되는 부분만 북한과 타협하는 결과로 귀착될 위험이 커진다. 북한 입장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핵무장 국가가 되기 위해 ‘2차 공격 능력’(Second Strike Capability)을 갖는 것이다. 왜냐하면 ICBM은 화성 15호 시험 발사 성공으로 확보했고, 이제 남은 것은 충분한 양의 핵탄두와 재진입 기술의 완성밖에 없었는데 이건 시간만 충분하면 해결될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사실상의 핵무장 국가가 되기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의 창도 그만큼 좁다. 시간을 끈다는 것 자체는 결과적으로 그걸 용인해 주는 것이다. ‘나중에 해결된다’가 아니라 사실상의 핵무장 국가가 되는 길을 열어주는 결과가 되는것이 아니겠나.”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이미 북한이 핵무장 국가라는 것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도 논란이다. ICBM만 막아도 미국엔 성과라고 인식하는 것이 아닌가.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미국 의회에서도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미국의 국익을 우선한다’고 했다. 최근엔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과의 협상을 ‘주요한 핵군축 교섭(major nuclear disarmament)’이라고 표현했지 않았나. 이건 비핵화(denuclearization)가 아니다. 북한이 사실상 핵무장 국가라는 인식이 함축된 표현이다. 이런 점에서 우려스럽다. 우리로서는 완전한 그리고 되돌릴 수 없고 검증 가능한 핵폐기를 해야 하는데, 그 대상이 미국이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 ICBM과 일부 핵탄두만 되면 곤란하다.”

지난 5일 미 육군의 해외 기지 중 최대 규모로 알려진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 모습.

-트럼프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한미연합훈련 중단도 선언했다.

“심각한 시그널이라고 생각한다. 트럼프 행정부,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 가진 동맹관은 과거의 동맹관과 상당히 다르다. 이젠 G7도 G6+1이라고 평가할 정도로의 얘기도 나오지 않나. 트럼프의 일방적인 동맹국 패싱이 있었다. 캐나다도 그렇고, 일본 아베 총리도 입장이 곤란한 상황을 맞았다. 기본적으로 경제적인 관점, 무역적인 관점에서 동맹을 평가하는 것인데 이런 동맹관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미국 동맹네트워크의 신뢰도를 저하시키고 있다. 매크로(거시적) 차원에서 그런 논란이 있고, 마이크로(미시적) 차원에서 한미 관계도 문제다. 외관상으로 볼 때 한국과 협의를 거친 뒤 연합훈련 중단을 얘기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트럼프 대통령은 스톱(stop·중단)이라고 하고, 미 행정부는 서스펜드(suspend·유예)라고 말한다. 스톱은 터미네이트(terminate·종료)의 의미라면, 서스펜드는 언제든 재개할 수 있는 개념이다. 문제는 미국의 이런 모습에 대해 우리 정부가 속속들이 알고 있지 못했던 것 같다. 한미동맹이나 주한미군에 관한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나 기자회견 또는 방송 인터뷰를 통해 (일방적으로) 나오는 현상은 상당히 우려스럽다. 1차 북한 핵위기 때 제네바 합의를 이행하기 위해 연합훈련인 팀스피리트 훈련을 일시 중단한 적이 있었다. 교섭이 진행되는 동안 일종의 동력을 마련하기 위해 중단했다. 이 정도는 한미가 협의해서 쓸 수 있는 카드인데 그런 협의 없이 미국 측,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입을 통해 연합훈련 중단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 청와대나 국방부는 이것을 알았느냐는 점을 짚어봐야 한다.”

-연합훈련 중단은 물론 주한미군 감축·철수 문제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본질적으로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은 비핵화와 관련이 없는 이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와 함께 비핵화를 추구하는 파트너인 미국이 먼저 비핵화를 위한 카드로 활용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발언을 하고 또 실제로 그럴 가능성을 보인다는 것은 우리로서는 큰 문제다. 사실 주한미군이라는 것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 더 나아가서는 세계적인 차원에서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북핵 문제 하나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감축·철수를 결정해버린다는 것은 상당히 우려할만하다. 우리 정부가 ‘주한미군 문제는 비핵화와 별개다’ ‘긴밀하게 협의해서 합의를 통해 결정해야 할 사안이다’라고 의견을 전달해야 한다. 미국도 트럼프가 다 결정하는 게 아니지 않나. 의회, 언론, 싱크탱크, 정부, NSC도 있다. 다양한 레벨에서 의사를 전하는 게 한미동맹을 위해서도, 우리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우리 정부는 여기서 더 나아가 우리 군 개별 훈련 중단까지 검토 중이다.

“문제가 있다고 본다. 북한이 평화 무드, 평화 공세를 통해서 평화의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는 단계이고 위협이 사라진 게 아닌데, 그것만 믿고 우리의 대비태세를 없앤다는 건 문제가 있다고 본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햇볕정책을 실시할 때 가장 앞세운 게 안보태세였다. 안보태세의 기반 위에서 남북관계가 발전하는 것이다. 우리는 분단 국가다. 북한은 아직도 우리와 공존하겠다는 명확한 행동을 보여주지 않았다. 말은 있었지만, 행동이 없다. 실질적인 북한의 위협과 군사적 능력이 줄어든 것도 없다. 의도만 평화적일 것이라고 우리가 추정할 뿐이다. 대비 태세는 유지해야 한다. 근거 없는 평화 무드에 휩싸이는 건 좋지 않다. 확실히 안보를 다져가면서 대화 해야 한다. 안보는 경제와 다르다. 경제는 위기를 겪고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지난 IMF 경험이 말해준다. 하지만 안보는 국가의 존망이 달린 문제다. 남북 관계 발전을 위해서는 튼튼한 안보가 뒷받침돼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가장 강조한 부분이다. 이건 보수건 진보건 똑같이 명심해야 한다.”

중국을 방문 중인 김정은과 리설주 내외(왼쪽)가 20일 베이징의 다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시진핑과 펑리위안 부부와 오찬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이 또다시 중국을 방문해 북중 혈맹의 건재를 과시했다.

“북한은 핵개발과 경제 개발이라는 양대 과제 중 핵개발은 끝냈으니 경제 개발로 가는 과정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과 본격적인 교섭을 앞두고 중국의 후원을 등에 업고 미국을 상대하겠다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 간에 카드 게임을 하는 것이다. 과거 김일성이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카드 게임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그 손자인 김정은은 미중간의 경쟁 구도를 100% 활용해서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외교적·경제적·안보적 이익을 얻어내겠다고 하고 있다. 정전 협정에서 중국을 뺐는데, 저는 이것이 이번에 중국을 움직인 근본 원인이었다고 본다. 북한의 친미화가 언급되는 것도 중국을 안달 나게 하기 위한 교섭 차원이었다. 중국이 180도 입장을 선회해서 북한에 접근하고 있고 비핵화보다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 이런 것에 신경 쓰고 있다. 이게 북한이 원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 상황은 대화 시작 때보다 나빠진 것이 아닌가 그렇게 본다.”

-북한은 이렇게 중국을 외교적 지렛대로 잘 이용하는 것 같은데 우리는 상대적으로 외교적 지렛대를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처음부터 중국을 배제하고 남북미 3자 구도로 가려고 했던 것 자체가 이 판을 이렇게 만들었다. 나는 처음부터 3자 구도를 비판했다. 우리가 종전선언을 남북미 간에 한다고 해서 결국은 중국이 더 북한편으로 기울게 하는 그런 결과가 초래되지 않았나.”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이 아니라, 김정은이 운전대를 잡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난 운전자론 이라는 콘셉트에 동의하지 않는다. 운전을 하면서 또 중재자를 하겠다는 것도 맞지 않다. 그리고 우리는 북핵 문제의 당사자이다. 대북 레버리지가 제재로 없어지고 북한을 움직일 힘이 없어졌으니 영향력이 가장 큰 미국을 활용할 뿐이다. 그런데 중재자라는 표현은 우리가 북한을 편들 가능성을 내포하는 단어다. 정 용어를 써야 한다면 ‘촉진자’라 해야 한다고 본다. 당사국으로서 중재자라는 표현은 안 좋은 이미지를 남긴다. 또 동맹국에 ‘같은 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인상을 준다. 핵 교섭이 왜 시작됐느냐, 미국이 중국을 압박해서 여러가지 대북 제재를 취하니까 북한으로서는 체제 안전성에 위협이 되니 교섭으로 나온 것이다. 기본적으로 미국의 경제적·군사적 압박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나오게 한 것이다. 이 문제는 한미 간 공조로 풀어야 한다. 미국이 북한을 잘 모르는 측면이 있는 만큼 우리는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일종의 핵폐기 대안을 제시해줌으로써 한미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북핵 폐기라는 목표를 촉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 보수 정당은 현재의 대화 국면에 당황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대로 진보 진영에선 현 상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남북관계를 활성화하려는 현 정부의 노력은 평가해야 한다. 다만 한반도의 평화는 비핵평화로 귀결되지 않으면 완성되지 않는다. 특히 평화를 앞세우는 과정에서 우리 안보의 근간인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가능성이 우려된다. 비핵화를 위한 가장 유력한 수단 중 하나가 평화체제와 미북 수교인데 이것을 먼저 내줘버리면 교섭이 안 된다. 북핵 폐기가 완료되는 시점에 평화 체제가 조성되도록 해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선행되지 않으면 지금까지 북한이 해왔던 교섭 패턴을 볼 때 비핵화를 안 할 것이다. 또 미국의 이해만을 고려한 수준에서 ‘충분한 비핵화’로 갈 위험도 있다. 북한과 교섭할 때는 강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 우리가 가진 카드를 먼저 주면서 비핵화를 추구한다면 우리의 목표인 CVID는 불가능해진다.”

-그런데 현재 국면은 평화협정을 먼저 체결하고 CVID로 가는 느낌이다. 여기에 이런 결과에 대해 국민들은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는 여론 조사 결과가 나온다. 정부도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과 일본에서도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일반 시민들은 평화라는 분위기를 바탕으로 상황을 평가한다. 반면 전문가들은 배경이나 역사적 과정 등 여러가지를 고려하기 때문에 평가가 짜다. 6·12 미북 정상회담도 전문가들은 3명 중 2명은 비판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여론조사 결과는 긍정적인 평가가 우세했다. 일본도 똑같다. 일본의 전문가들은 비판적으로 회담을 본 반면, 국민들은 잘됐다고 평가했다. 디지털 민주주의의 맹점이기도 하다. 어떤 현상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시각적으로 받아들인다. 외교의 어려움이 이런 데 있다. 만약 여론에 따라서 외교를 한다면 외교를 할 이유가 없다. 우리 국익이 무엇인지에 대해 언론이 더욱 적극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이번 기회는 정말 마지막 기회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가 21일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앞으로 미북 간 비핵화 협상은 어떻게 진행될 거라고 보나.

“올가을까지 북한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2차 미북 정상회담 전에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 대표단과 협상을 할 것이다. 1차 미북 합의문에는 폼페이오의 두 차례의 방북과 성김 주필리핀 미국대사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간의 교섭 내용이 모두 반영됐다고 보지 않는다. 폼페이오 장관이 추가 교섭을 해서 만족할 만한 로드맵을 만들어낸다면 절반은 왔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행에 악마가 있다는 점이다. 합의도 어렵지만 이행은 더 어렵다. 이런 현실을 국민들에게 잘 알려야 한다. 남북관계 개선을 부정적으로 평가할 필요는 없지만, 대남 위협을 얼마나 줄였는지에 따라 안보와 평화를 평가해야 한다. 말과 분위기로만 평가하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할 가능성이 있다.”

-최소한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미국과 북한의 로드맵이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

“앞서 말한 시한과 검증 체계, 그리고 ‘조기 수확(early harvest)’이 필요하다. 북한의 반대가 극심하기 때문에 리비아 방식의 비핵화는 안 될 테지만 그와 유사한 선행 조치는 필요하다고 본다. 또 제재에 관한 조항이 들어갈 것인데, 여기엔 반드시 ‘스냅백’(Snapback Clause)조항을 넣어야 한다. 비핵화를 이행하다가 돌이키게 되면 제재도 바로 되돌아가는 걸 말한다. 또 시한엔 ‘핵심 비핵화 조치’(Major Dismantlement)를 못박아야 한다. 완전한 핵폐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비핵화 조치 중 핵심적인 조치, 핵능력을 무력화하는 조치는 단기간에 해야 한다.”

-로드맵을 어떻게 짜야하는지에 대한 우리 내부의 견해 차도 크다.

“보수와 진보는 북한에 접근하는 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보수 진영에선 ‘레짐 체인지’를 염두에 두고 있는 반면, 진보 진영에선 북한을 변화시켜보겠다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두 개의 서로 다른 접근 방법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수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보가 보수보다 북한을 훨씬 더 많이 포용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사실은 김정은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다. 비핵화 과정에서 북한이 추구하는 것은 북한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한 개혁 개방이다. 그 개혁 개방을 위해선 외부 수혈이 필요하고, 외부 수혈을 받는 과정에서 북한 체제에 미칠 영향을 과연 북한 당국이 통제할 수 있을까. 이게 딜레마다. 잘돼도 문제, 안 돼도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북핵 폐기를 전제로 삼고, 북한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담론을 형성해야 한다. 여기엔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다. 진보 쪽에선 그동안 소홀했던 안보 이슈를 신경을 쓰고, 보수 쪽에선 남북관계 발전에 무게를 두고 사고해서 공론화해야 한다. 현재 우리 사회는 남북보다 남남 갈등이 더 심각하다. 남남갈등을 해소하고 평화와 통일을 위한 일련의 과정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북한이 비핵화하느냐, 안 하느냐를 두고 얘기할 게 아니라 그 결과를 두고 미리 담론을 펼쳐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 한쪽(진보)은 북한을 완전히 신뢰하는 툴로, 또 다른 한쪽(보수)에선 완전히 안 믿는 툴로 논쟁을 벌이면 싸우다 끝날 뿐이다. 상황은 있는 그대로 보면서, 여기서 우리의 국익은 무엇인지 진영 논리를 벗어나 토론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트럼프 대통령 한명에 좌우되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국무위원들이 12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만남을 지켜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한 명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좌우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트럼프 대통령은 미북 협상에서 미국의 자국 이익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현재 대북 제재는 무수히 많다. 그것을 다 해결하기까지는 시간이 다소 걸릴 것이다. 미·중 수교도 닉슨 전 대통령이 방중한 뒤 6년이 걸렸다. 평양은 하루빨리 미북 수교를 원하는데, 과연 6년이나 기다릴까. 이른 시일 내의 미북 수교를 밀어붙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미국의 대북 제재를 푸는 과정에는 미국 의회가 권한을 많이 갖고 있다. 여기에 우리의 외교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입장을 잘 전달해서 트럼프가 내세운 미국 우선주의, 또 경제적 관점에서 안보와 외교를 대하는 태도를 견제해야 한다.”

-외교전장의 범위가 더욱 넓어질 것 같다.

“우리가 주체 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 문제를 미국과 북한에만 던져줄 게 아니다. 우리 문제이지 않나. 다각적 노력을 해야 한다. 꼭 미국만 있는 게 아니다. 일단 영국도 역할을 해줄 수 있다. 미·영은 특수 관계다. 정 안 되면 이스라엘을 통할 수도 있다. 북핵으로 핵확산이 되면 가장 위협이 되는 게 중동이다. 이스라엘이 미국 의회에 로비를 강하게 하는 만큼 이쪽을 활용할 수도 있다. 수단을 다양화해서 우리 입장이 로드맵에 반영되도록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예전부터 북한 문제를 다룰 때 관련해왔던 강조한 3가지, 3P가 있다. 인내(Patience), 지속성(Persistence), 그리고 실용적(pragmatic)이다. 여기에 따라 북핵 문제도 접근해야 한다.”

-실리적 접근 방식 같다.

“김정은에 대해서 ‘선이냐, 악이냐’를 따져서 무엇을 하겠는가. 어차피 이건 지금 시점에서는 판단이 안 된다. 하지만 가을만 되면 우리가 분별할 수 있다. 그때 나올 로드맵을 보면 알 것이다. 지금은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로드맵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 실질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념적으로 대립할 문제가 아니다. ‘위장평화 쇼’라는 게 나중에 드러나면, 그때 비판해도 늦지 않다. 지금은 그러한 우려가 있으니 어떻게 대책을 세울 것인지를 논의하는 게 올바른 접근 방법이다. 북한이 핵무장국가가 되면 통일은 물 건너간다. 북한이 핵무장국가가 되면 결국 한반도는 두 개의 국가로 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우리는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한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 : 1955년 충북 영동 출생. 1975년 9회 외무고시에 합격해 1976년 외교부(당시 외무부)에 입부했다. 일본과장, 조약국장, 주유엔대표부 차석대사, 주이스라엘 대사, 외교통상부 제1차관, 제2차관을 역임했다. 2011년 6월부터 2013년 5월까지 주일본 대사를 역임했다. 국립외교원 국제법센터 소장,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특임연구원을 지냈으며, 현재 법무법인 세종의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