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에 있는 뉴코아아울렛과 대형 마트 킴스클럽. 1980년 한신공영이 아파트를 건설하고 남는 땅에 세운 이 쇼핑센터는 거주민들의 소비 심리를 자극하며 대형 할인점 전성시대를 열었다.

1958년생 작가 이남희의 1996년작 소설 '슈퍼마켓에서 길을 잃다'는 수도권 신도시를 무대로 새롭게 등장한 쇼핑 공간을 소개한다. 대형 할인점이 그것이다. 신도시로 이사 온 주부 K씨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인근에 새로 들어선 대형 할인점에 들러 카트를 밀며 쇼핑을 즐긴다. 그녀가 보기에 '아파트에 갇혀 앞마당을 잃어버린 부근 주민들'에게 '인공의 공원'이나 다름없다. 그에 비하면 아파트 상가 수퍼마켓은 '진화에서 따돌림을 당한 부적격 생물' 같은 처지다.

사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신도시의 상업 용지 분양과 투자 유치는 지지부진했다. 유통업체들은 유동 인구가 적은 신도시의 소비 잠재력에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투자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아파트 상가마다 자리 잡은 소규모 상권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이런 상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1993년 12월 우루과이 라운드 타결이 변화의 촉매제였다. 국내 유통업체들은 유통 시장의 완전 개방에 대비하기 위해 백화점 지점 수를 늘리고 본격적으로 할인점 사업에 뛰어들었다. 또한 다국적 유통업체가 몰려오기 전에 부지를 선점하기 위해 신속하게 신도시의 상업 용지를 매입했다. 삼성이나 LG 같은 제조업 중심 대기업도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에 따라 신도시의 소비 경관은 1995년을 기점으로 급속히 변모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황량하게 공터로 방치되었던 상업 용지에 대규모의 쇼핑 공간이 속속 들어서기 시작했다. 분당 신도시는 거주민의 높은 소비 잠재력 덕분에 유통업체들의 최대 격전지 중 하나였다. 선두 주자는 1980년 반포에 백화점을 열었던 뉴코아였다. 이 업체는 1995년에 백화점과 할인점이 결합된 복합 쇼핑 공간을 선보였다. 그 뒤를 이어 1996년에는 청구건설이 대형 고급 백화점 블루힐을, 신세계가 이마트를 개점했다. 그리고 한 해 뒤 삼성이 백화점을 열었다.

주지하다시피 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쇼핑 공간의 우세종은 단연 대형 할인점이었다. 1980년대 강남이 백화점 다점포 체제와 수퍼마켓 체인의 도입을 가져왔다면, 1990년대 신도시는 대형 할인점 전성시대의 문을 열었던 셈이다.

한편 이 시기 유통업체들 간의 과잉 경쟁을 고스란히 보여준 것은 셔틀버스였다. 분당만 해도 150여 대에 달하는 대형 할인점과 백화점의 셔틀버스가 아파트 단지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다. 특히 삼성플라자는 분당뿐만 아니라 강남, 수원, 평촌 등 24개의 노선에 58대의 버스를 운영했다. "백화점 셔틀버스 타고 강남에서 분당으로 퇴근한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였다.

2001년, 운수업체들의 요구에 따라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이 시행되자 유통업체의 셔틀버스 운영은 중단되었다. 그렇다고 신도시에서 셔틀버스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학원이 운영하는 셔틀버스가 그 빈자리를 채웠다. 신도시에서 성장한 386세대의 자녀들이 10대 문턱을 넘어서면서 해당 지역의 사교육 시장이 성장한 결과였다. 확실히 신도시의 셔틀버스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개별 아파트 단지의 거주민들이 쇼핑, 사교육과 맺는 관계를 가시화하는 장치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