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친구가 아르바이트 자리 구해준다고 했어. 그 아저씨 만나러 해남으로 가."
지난 16일 오후 2시쯤, 전남 강진군에서 여고생 이모(16)양은 친구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낸 뒤 사라졌다.
실종신고를 접수한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용의자는 이양이 만나기로 했다는 '아빠 친구' 김모(51)씨였다. 김씨와 이양은 이날 비슷한 시점에 각자의 집에서 출발했다.

경찰은 실종 당일 김씨와 이양이 만났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양 휴대전화 신호가 마지막으로 잡힌 것은 강진군 도암면 한 야산인데, 바로 이날 오후 도암면 마을회관 CCTV에 김씨 차량이 잡힌 것이다.

도암면은 용의자 김씨의 고향으로 지리에 익숙한 곳이다. 그는 이 곳에서 약 2시간 머문 뒤 자택인 강진군 군동면으로 돌아갔다. 이날 오후 6시쯤 귀가한 김씨는 호스로 물을 뿌려 자신의 승용차를 씻기 시작했다. 차량에 남은 ‘어떤 흔적’을 지우기 위한 행동으로 해석된다.

석연치 않은 점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이로부터 5시간 뒤인 오후 11시 8분, 이양 어머니가 자신의 집을 찾아오자 김씨가 뒷문으로 달아나는 장면이 CCTV에 잡힌 것이다. 당시 김씨는 트레이닝복, 운동화 차림이었다. “이양 어머니가 초인종을 누르자, 옷을 갈아입지도 못하고 뒷문으로 놀라 도주한 겁니다.” 경찰 관계자 얘기다.

경찰은 ‘강진 여고생 실종사건’ 실마리를 쥔 김씨 추적에 수사력을 모았다. 하지만 17일 오전 6시 17분쯤, 유력 용의자 김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집에서 1km 떨어진 철도공사현장으로 목을 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이양 어머니를 피해 달아났을 때 옷차림 그대로였다.

숨진 김씨의 휴대전화에는 실종 당일 이양과 연락한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날 세차한 차량의 블랙박스도 꺼져 있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김씨 휴대전화에 대한 디지털포렌식(인터넷·컴퓨터상에 남긴 증거를 찾는 과학수사)을 의뢰하는 한편, 그가 또 다른 휴대전화를 사용한 적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차량 세차 등 증거인멸 정황이 포착된만큼 이양과의 연락내용을 급히 삭제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경찰은 김씨 차량에 대한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분석에도 착수했다.

사라진 이양은 실종 나흘 째인 19일까지도 행적이 묘연하다. 경찰은 이양이 사라진 도암면 야산 일대에서 수색작업을 전개하고 있다. 수색에는 헬기 2대, 수색견, 드론, 소방 특수수색대 등 600여명이 동원됐다. 김재순 강진경찰서 수사과장은 “실종자의 생존 여부를 포함해서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며 “현재는 무엇보다 실종자를 찾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