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을 계기로 2016년 후반부터 시작된 거대한 정치적 재편 과정이 일단락된 것 같다. 지방선거 결과를 두고 자유한국당과 보수 진영의 충격이 큰 것 같지만, 정치적 관성으로 그들만이 깨닫지 못했을 뿐 세상은 이미 변해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방선거의 승리와 함께 보다 안정적인 기반에서 국정을 이끌어 갈 수 있게 되었다.

지난 1년여의 시간은 문재인 정부에는 사격(射擊)으로 비유하자면 '영점 조정'의 시간이었다. 예상찮은 조기 대선으로 인수 기간을 갖지 못한 채 국정을 맡아야 했기 때문에 그동안의 국정 운영은 일종의 과도기적 상태였다고 할 수 있다. 이제부터가 나라 살림을 이끌고 가는 문재인 정부의 제대로 된 역량, 즉 '진짜 실력'을 보여줘야 할 때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국정 운영 패턴에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 그동안 문 대통령은 청와대를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청와대가 대부분의 사안을 주도해 왔다. 하지만 스스로 법을 만들 수도 없고 정책을 집행할 수도 없는 청와대가 직접 나서 정책을 지시하고 이끌어나가는 것은 바람직한 방식이라고 보기 어렵다.

물론 청와대가 직접 나서야 하는 일도 있다. 예컨대 대북 비밀 접촉이나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의 정책 조율은 사안의 중대함이나 시급함으로 인해 청와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이른바 '적폐 청산' 작업 역시 고도의 정치적 판단과 결정이 수반되는 이전 정권의 고위직 인사에 대한 사정 작업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청와대가 간여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될 사안에도 청와대의 역할이 컸다. 결국은 국회에서 처리되어야 할 헌법 개정 작업을 청와대가 직접 담당했고, 당은 논의 과정에서 소외되어 있었다. 국무위원들은 청와대가 주도한 개헌안에 대해 최종 순간에 형식적인 추인만을 했다. 개헌안에 대한 발표 역시 국무총리도, 법무장관도, 법제처장도 아닌 대통령의 '비서'가 담당했다.

개별적인 시민들의 민원도 청와대가 직접 나서 처리하고 있다.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을 통해 공공 사안에 대한 시민의 참여를 권장하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는 취지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청와대가 나서는 만큼 청원 사안과 관련된 정책을 담당하는 각 행정 부서나 장관의 역할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입법과 관련된 사안이라면 집권당의 역할도 무시될 수 있다. 더욱이 청와대 국민 청원을 활용하는 국민으로서는 국회나 해당 부서보다 청와대를 통하는 것이 신속하고 효율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 생각의 기저에는 무엇이든 청와대만 통하면 다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이 깔려 있다.

지방선거 이후 개각이 예상되고 있지만 장관 몇 명의 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국정 운영의 스타일이 변화되어야 한다. 예외적인 소수 사안을 제외하면 청와대는 뒷전으로 물러나고 국무회의가 실제로 '국무'를 논의하고 결정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또한 청와대 비서진이 아니라 각 부처 장관들이 권한과 책임을 갖고 정책을 이끌고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최근 불거진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간의 미묘한 마찰과 갈등 역시 이런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에는 내각뿐만 아니라 여당 역시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신의 정부를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라고 부르겠다고 했지만 당 소속 국회의원 몇 명의 내각 참여를 제외하면 그간 국정 운영 과정에서 '집권당'의 역할은 미미했다.

지방선거 결과가 나온 후 문재인 대통령은 "결코 자만하거나 안일해지지 않도록 각별히 경계하겠다"고 했다. 바람직한 자세지만 매우 동질적인 소수의 측근들로 둘러싸인 청와대 중심의 국정 운영은 자칫 자만과 안일로 이어지기 쉽다. 지난 정부의 실패 역시 청와대 중심의 소수에 의존한 국정운영의 결과였다. 문 대통령이 지난 대선 과정에서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고 했던 것도 바로 이런 점을 우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지방선거에서 압승한 이 시점이 문재인 정부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정치적 순간일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불가피하게 낮아질 것이고 야당은 언제까지나 저렇게 무기력한 존재로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이제부터의 국정 운영이 정말 중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