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원(雪原)의 마라톤'으로 불리는 스키 크로스컨트리 간판스타 이채원(37)은 최근 대한스키협회가 발표한 2018~19 국가대표 명단에 빠져 있었다. 그는 1997년 국가대표로 선발된 뒤 2018년 평창올림픽까지 22년째 달아온 태극 마크를 후배들에게 넘겨주기로 결정했다.
"내가 내린 결정이었지만 막상 대표팀 명단에 이름이 없으니 허전했어요. 홀가분하면서도 불안하기도 하고…."
아직도 실력으론 이채원을 이길 후배가 없다. 대표팀 지도자들도 성적을 생각하면 그가 남아주길 바란다. 하지만 이채원은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싶었다. 지금 물러나지 않으면 또 미련을 가질 것 같아 용단을 내렸다"고 했다. 그는 대표팀은 떠나지만 소속팀인 평창군청에서 1~2년 더 현역 생활을 한 뒤 완전히 은퇴할 예정이다.
이채원은 동계체전 개인 통산 최다 금메달 보유자다. 4관왕을 여섯 차례나 하는 등 지금까지 71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국가대표 하면서 인생 최고 경험도, 온갖 쓰라림과 좌절도 다 겪었다"고 했다. 국내에선 적수가 없었지만, 국제대회에 나가면 매번 메달권 밖으로 밀려나 속이 새까맣게 탔다고 한다.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올림픽을 시작으로 평창올림픽까지 다섯 차례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성적은 시원찮았다.
국제대회 우승에 목말랐던 그는 2011년 카자흐스탄 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에서 그 갈증을 풀었다. 그는 프리 10㎞에서 한국 크로스컨트리 사상 첫 금메달을 따냈다. 당시 대회엔 일본·중국·카자흐스탄의 쟁쟁한 선수들이 참가해 이채원은 동메달 정도를 기대했다고 한다.
"5㎞ 지점을 지날 때 1위로 달리고 있었어요. 당시 김대영 감독님이 '네 인생 걸어야 한다. 채원아! 가자, 미쳐 보자!'고 막 소리치는 거예요. 아무 생각 없이 정말 앞만 보고 미친 듯 달렸어요." 그는 2위와 무려 45초 차이로 우승했다. 그가 생생하게 기억하는 스키 인생 최고의 경험이었다. 그토록 기다렸던 평창올림픽에선 57위에 그쳤다. 그는 "고향 평창에서 열린 올림픽이라 멋진 모습 보여주고 싶었는데, 두고두고 아쉽다"고 했다.
마침 인터뷰 중 유치원에서 나온 딸 은서가 엄마(이채원)를 안고 놓질 않았다.
"은서가 껌 딱지가 돼 버렸어요. 대표 시절 잠시 집에 오면 내가 선수촌에 다시 갈까 봐 안절부절못했어요. 이젠 자고 일어나면 엄마가 옆에 있고, 밥도 해주고, 유치원에도 바래다주니 너무 행복해하네요."
이채원은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사는 평범한 '평창댁'으로 살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