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페 콘테(53·사진) 이탈리아 신임 총리가 이끄는 새 연립정부가 6일(현지 시각) 하원 신임 투표를 통과함에 따라 본격적인 국정 운영에 돌입했다. 반체제 정당인 오성운동과 극우성향의 동맹으로 구성된 연립정부의 수반으로 낙점돼 지난 1일 공식 취임한 콘테 총리는 이날 취임 후 첫 연설에서 확고한 반(反) EU 정책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경제 정책은 "국가 채무를 줄이기보다는 경제 성장을 통해 부채비율을 줄이겠다"고 강조했다. 서유럽에 EU의 긴축 정책에 반하는 재정 지출 확대, 난민 강경 단속 등을 핵심 가치로 하는 포퓰리즘 정권이 들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국채 금리 3%대로 올라…伊 리스크 우려하는 투자자들

국제 금융권은 아직 ‘이탈리아 리스크’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날 2년 만기 이탈리아 국채 금리는 전영업일 대비 0.047%포인트 오른 연 1.465%를 기록했고, 10년물 국채금리는 0.022%포인트가 올라 연 3%에 육박했다. 이탈리아 국채를 상당수 보유한 이탈리아 은행들의 주가도 타격을 입었다. 이탈리아 대형은행인 인테사상파올로와 우니크레디트의 주가는 각각 2%가량 하락했으며 UBI방카 주가도 1% 이상 하락했다.

투자자들이 가장 우려스러워하는 대목은 신정부가 내세운 공약들이 국가 재정에 부담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콘테 정부는 저소득층에 월 780유로의 기본소득 지급, 세금 인하, 연금 개혁안 철폐 등의 공약을 내걸었다. 또한 국가 부채를 줄이기보다는 경제 성장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밝히며 긴축을 거부했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오른쪽)가 6일 하원에서 새 정부에 대한 신임안이 통과된 후 의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정책이 재정 악화로 연결돼 이탈리아가 디폴트(채무 불이행) 상태가 되면 위기가 EU 전체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탈리아의 경제 규모가 EU 3위이며 부채 규모는 2500억 유로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GDP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무려 130%로 역내에서 그리스 다음으로 높고 EU의 가이드라인 60%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예정대로 올해 중 양적완화 종료를 선언하면, 이탈리아 국채 금리는 더 올라 재정 부담이 더 커지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ECB는 올해 9월 말 기존 양적완화 정책을 끝낼 예정이다. 마리오 드라기 총재는 과거 기자회견에서 중앙은행의 자산 매입을 서서히 줄여가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 콘테 총리 “가짜 연대 하의 이민사업 끝낼 것”

이탈리아 정치권의 핵심 이슈인 난민 문제도 대대적인 손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EU의 난민 정책에 대해 콘테 총리는 “우리는 가짜 연대의 망토 아래서 확장된 이민 사업을 끝내려 한다. ‘더블린 조약’을 정비해야 한다고 강하게 요청할 것”이라며 EU 회원국 간 난민 배분 문제를 걸고 넘어졌다.

1997년 발효된 더블린조약은 유럽으로 들어오는 난민이 처음 입국한 국가에서 망명 신청을 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탈리아에는 2013년 이래 약 70만명의 난민이 지중해를 거쳐 이탈리아로 들어왔는데, 이 조약 탓에 이탈리아의 난민 수용 부담이 크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탈리아 최대정당인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의 루이지 디 마이오 대표가 29일(현지 시각) 나폴리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다만, 이탈리아가 EU와 완전히 등을 돌리는 정책을 펴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아직은 지배적이다. 페르디난도 넬리 펠로체 이탈리아 국제관계연구기관 대표는 “EU 담당 장관에 반EU 성향의 파올로 사보나를 지명하긴 했지만, 과거 EU 담당 장관을 지낸 친EU 성향의 엔조 모아베로 밀라네시를 외무장관으로 지명했다는 것은 현 정부가 (EU와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도박을 원치 않는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EU 핵심 지도층도 아직은 새 정부의 행보에 눈치를 보고 있다. 도날드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도 콘테 총리에게 보낸 축하 서한에서 “우리 앞의 공동 도전들을 극복하기 위해 어느 때보다 강력한 통합과 연대가 필요하다”고 했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새 정부가 주변국, EU와 협조하며 EU의 중심 역할을 하는 데 있어 역량과 의지를 보일 것으로 믿는다”며 “난민 문제를 포함해 많은 과제를 해결하고자 이탈리아 정부와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 유럽과 거리두고 美·러시아와 가까워질듯

이탈리아는 당분간 EU와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미국과는 보다 가까이 다가가는 정책을 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이번 내각에서 내무장관을 차지한 마테오 살비니 동맹 대표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옹호론자인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2016년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와 사진을 찍는 등 트럼프와 친분을 과시했다. 당시 트위터에 “트럼프는 훌륭하다. 내 생각에 그는 다수의 미국인을 대변하고 있다. 나라면 그에게 투표할 것”이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러시아와의 관계도 돈독해질 가능성이 크다. 살비니 대표가 친러 성향인데다, 콘테 총리도 연설에서 “EU의 러시아 제재 재검토에 앞장설 것”이라며 러시아 편을 드는 발언을 했다. EU는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에 개입하고 크림반도를 강제합병하자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결정, 이를 계속 연장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