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오세티야, 압하지야, 도네츠크, 루간스크, 나고르노카라바흐….

이름도 생소하지만 스스로는 신생국이라고 자처하는 '국명(國名)'이다. 이들은 모두 러시아 서남부 외곽 분쟁 지역에 몰려 있다. 다섯 곳 합친 면적이 남한 절반도 안 된다. 구소련 지역에서 최근 생겨났고, 현재 친(親)러 세력이 장악하고 있다는 게 공통점이다. 이들은 아직 국제사회 승인을 받지 못했다. 이 '미승인국'들이 러시아 푸틴 정권의 비호 아래 존재감을 키우며 본격적인 '국가 행위'를 하면서 국제사회의 골칫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러시아와 서방 전선(戰線)의 새로운 뇌관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달 29일 시리아 외교부는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를 정식 국가로 승인, 대사관을 개설하겠다고 밝혔다. 당장 조지아가 발끈했다.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는 조지아 영토에 있기 때문이다. 조지아 외교장관은 "러시아의 조종을 받은 시리아 정권이 국제법을 위반했다. 당장 외교 관계를 끊겠다"고 했다. 헤더 나워트 미 국무부 대변인도 "두 곳이 조지아 땅이라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시리아를 강력히 비난한다"고 긴급 성명을 냈다.

이 두 곳은 이미 러시아·베네수엘라·니카라과·나우루의 승인도 받았다. 사실상 러시아가 승인을 주도했다. 러시아는 2008년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의 무장 독립봉기를 강제 진압하던 조지아를 침공해 승리한 뒤 두 곳을 정식 국가로 승인했다. 정상 국가로 대우하며 물심양면 지원했다. 러시아는 최근 러시아·남오세티야 연합군 창설 방침을 확정했다. 교육협정도 맺어 두 나라 학생 학력을 상호 인정해주기로 했다. 압하지야와는 응급 의료 지원 및 의약품 제공 혜택을 해주고 있다. 두 곳 지도자들은 러시아가 주최하는 국제 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깍듯한 정부 고위 관계자 대우를 받는다.

러시아가 이렇게 나오자 이곳을 분쟁 지역으로만 치부하던 국제사회의 시선도 약간 달라지고 있다. 남태평양 소국 나우루는 지난 2월 남오세티야와 무(無)비자 협정에 서명했다. 3월에는 요르단 의회 대표단이 압하지야를 방문해 라울 하짐바 대통령과 만나 "승전(勝戰)을 축하하고 국제사회에서 독립국으로 인정받길 기대한다"는 덕담을 건넸다. 요르단은 중동 분쟁에서 중재역을 자임하는 나라다. 조지아의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도네츠크와 루간스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내전 중 생긴 미승인국이다. 러시아는 친서방·친러 세력 간 분열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내전에 군사 개입해 2014년 4월 크림반도를 전격 합병했다. 이 틈을 타 러시아계 주민 비율이 높은 동부 도네츠크·루간스크 지역이 각각 '도네츠크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독립을 주장했다. 당초 '친러 무장세력들의 장악 지역'쯤으로 인식돼 왔으나 우크라이나 내전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이들도 부쩍 '나라 행세'를 시작하고 있다.

아나톨리 비빌로프 남오세티야 대통령은 지난달 도네츠크를 방문해 알렉산드르 자하르첸코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역시 구소련권 국가인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사이의 영토 분쟁 지역이면서 친러시아·친아르메니아계 미승인국인 나고르노카라바흐도 여기 가세했다. 나고르노카라바흐 외교장관과 남오세티야 외교장관이 지난달 양자 회동을 갖고 "경제협력을 확대하자"고 합의했다. 러시아의 비호·묵인하에 미승인국들끼리 상부상조하며 존재감을 키우는 것이다.

이 미승인국들의 국가 행세는 결국 옛 소련 시절의 전성기를 구가하려는 러시아의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유럽이사회의 유럽·러시아 관계 전문가인 소피아 퍽슬리는 이 미승인국들을 '회색지대(grey zones)'라고 정의하고 "러시아가 회색지대의 실제 통치자들을 군사·경제·행정·정치적으로 도우면서, 유럽 내 영향력 강화의 전초 기지로 삼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