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희수야. 너 람보르기니 한 대 있으면 여자는 쉽게 구해." 양호가 50대 총각인 내 친구한테 충고했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으하하" 웃었다. 열 살 딸이 이런 말을 하다니? 벌써 돈 냄새를 아나?
생각해보니 맞는 말 같기도 하다. 여자는 배우자를 고를 때 경제력부터 생각하게 된다. 자본주의사회 아닌가. 고급 자동차는 부(富)의 상징이다. "양호, 너 말이 맞다. 꼬마 철학가네" 하고 모두 한바탕 웃었다.
미국 사람만큼 자동차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뉴요커들은 크게 신경 안 쓰지만 서부, 특히 캘리포니아에서 자동차는 애인보다 중요하다. LA에 3년 살면서 베벌리힐스 사진 스튜디오에서 일했다. 짜증이 날 정도로 날씨가 매일 좋았다. 점심때 밖에 나와 차에 기대 샌드위치를 먹는데 동료 캐시가 "야! 내 차에 기대지 마!" 하고 고함을 질렀다. 깜짝 놀라 물러섰다. 똥차 한 대 가지고 난리 치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만큼 자동차 사랑은 캘리포니아 사람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당연한 전제조건이다. 이글스 노래를 들어보라. 고속도로(highway)를 질주하는 노래가 얼마나 많은가. 그것도 자동차 뚜껑을 열고.
1908년 포드 모델 T가 대량생산되면서 미국 시민들이 드디어 자동차를 소유하게 됐다. 자동차를 타고 더 넓은 세상을 구경하게 된다. 자동차에 대한 극심한 사랑은 여기서부터 시작해 지금도 미국 중상층의 '보배 1호'다. 미국이 세계 최고의 자동차 산업을 키우게 된 계기는 미국 주(州) 사이를 연결해 대륙을 횡단할 수 있도록 만든 주간(州間)고속도로 덕분이다. 1916년 고속도로를 처음 착공했지만 1차 세계대전으로 돈이 떨어져 중단됐다. 1938년 루스벨트 대통령의 지시로 다시 시작해 8개 고속도로를 뚫었다. 그렇지만 가장 큰 업적을 세운 사람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이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연합군 총사령관이었을 때 독일 아우토반을 목격하고 미국이 강대국이 되려면 고속도로로 전국을 연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주간고속도로가 4만7856마일(약 7만7017㎞)이나 된다. 아이젠하워 대통령 업적을 기리는 의미에서 '아이젠하워 주간고속도로(Eisenhower Interstate System)'라 부른다.
미국같이 자동차 여행하기 좋은 나라도 없다. 서른 살 때 뉴욕에서 캘리포니아를 왕복했다. 갈 때는 새 직장 면접 때문에 급하게 달려 열흘 만에 돌파했고, 돌아올 때는 여유를 즐겼다. 뉴올리언스 재즈도 듣고 멤피스에서 유명한 갈비구이도 먹었다. 엘비스 프레슬리 집도 가봤다. 3주 걸렸다.
지난 양호 봄방학 때는 차를 타고 플로리다를 질주했다. 3박 4일 걸렸다. 고독한 노총각 화가 희수도 함께했다. 한국도 고속도로 휴게소가 잘돼 있지만 미국의 휴식 공간도 참 좋다. 남부의 맛있는 치킨, 포크 립, 팬케이크를 먹으며 1100마일을 나 혼자 19시간 운전했다. 나는 할배인데, 하하!
도착하자마자 바에 가서 시원한 맥주를 들이켜는데 웨이트리스가 너무 예쁘다. 완전 미스 플로리다 수준이다. 남자들이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녀를 바라보는데 양호가 그녀에게 한마디 한다. "저 남자 이름은 희수인데, 람보르기니를 몰아." 웨이트리스가 "정말?" 하면서 관심을 보이며 희수와 사진 찍는 것을 허락했다. 양호야, 너는 진짜 철학가다. 그리고 거짓말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