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 구합니다.” 생활정보지 광고로 만나 성사된 ‘황혼 재혼’, 한 달 만에 남편은 33차례나 칼에 찔렸다. 새 아내는 남편을 살해하고 10일간 도주극을 벌였다.

◇‘교차로’가 맺어준 인연, 한 달 만에 비극으로 끝나

두 사람의 만남은 석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찰과 주변에 따르면 월남전 참전용사 신모(75)씨는 고엽제 후유증으로 한 쪽 눈을 실명한 상태였다. 다른 눈마저 안과질환 등으로 가물가물해졌다. 버스 번호판도 알아보기 어려운 지경이 되자 신씨는 “인생 황혼을 같이 보낼 배우자를 찾아야겠다”고 주변에 말했다.

신씨가 생활정보지 '교차로'에 "배우자 구합니다" 광고를 낸 것은 지난 2월이었다. 충북 증평 식당에서 일하던 강모(55)씨가 마침 이 광고를 봤다.
"이젠 나도 좀 편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재혼하기로 결심했어요. 광고보고 전화하니까 (남편이) 국가유공자 보상금을 꼬박꼬박 받는다면서 생활에는 문제가 없다고도 했고…" 강씨는 경찰에 이렇게 진술했다. 신씨 지인들은 "동네에서 별명이 '신 중위'였던 신씨가 평소 '국가유공자 보상금 받는다'는 사실을 주위에 널리 알렸다"고 했다.

충남 논산시 화지동 은행 앞 CCTV에 찍힌 남편 살해 피의자 강씨의 모습.

여생(餘生)을 보살펴줄 아내가 필요했던 신씨, 생활비를 책임질 남편이 필요했던 강씨는 곧장 충북 청주시 흥덕구 신씨 전셋집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교차로 인연’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이웃들은 “두 사람이 서로 멀찍이 떨어진 채로 걷는 모습만 봤다”고 전했다. 동네에선 “여자가 돈 때문에 결혼했다” “남편이 부인에게 못생겼다고 바깥에 나가지 말라고 했다더라”는 소문이 돌았다.

두 사람은 4월 25일 혼인신고도 했다. 장애인인 전 남편과 별거해오던 강씨는 결혼을 위해 전 남편과 이혼 도장도 찍었다. 그렇지만 돈 문제로 언성을 높이는 일은 더 잦아졌다. 부인 강씨가 용돈 30만원을 50만원으로 올려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남편 신씨는 “지금 용돈이 싫으면 나가라”고 응수했다.

“(강씨) 빚 600만원도 이미 갚아줬는데 아내가 자꾸 돈만 달라고 그래…” 숨지기 전 신씨는 친구들에게 이런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씩씩해서 동네에서 ‘신 중위’로 통했다는 그는 매달 200여만원을 국가유공자 보상금으로 수령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7일 밤 11시 5분 결국 사달이 났다. 혼자서 맥주 4000cc를 들이킨 강씨가 “자꾸 나가라고 할거면 위자료 1억원을 달라”고 따지다 남편 신씨를 살해한 것이다. 강씨는 싱크대에 있던 사각형 모양의 중국집 식칼, 대형 식칼을 무차별적으로 휘둘렀다. 신씨 시신에서는 33개의 자상(刺傷)이 발견됐다.

◇열흘 간 경찰 추적 피해...우유로 배 채우며 230km 도주

강씨는 지난 27일 체포될 때까지 10일간 약 230km를 도주했다.
먼저 살인 후 자신의 마티즈 차량으로 충북 괴산군까지 달아났다. 여기서부터는 차량을 버리고 걸었다. 다른 지역으로 넘어갈 때는 버스로 움직였다. 강씨는 급히 도주한 탓에 휴대전화·신분증을 챙기지 못했는데 이 점이 추적을 어렵게 했다.

도주 경로는 청주→증평→괴산→음성→청주→대전으로 이어졌다. 대전 버스터미널에서는 처음 보는 남성을 유혹해 18일부터 20일까지 숨어 지냈다. 20일 은신처에서 나온 강씨는 대전 대덕구→신탄진→대전 대덕구→대전역→대전터미널→대전대덕구 순으로 빙빙 돌았다. 경찰 추적을 따돌리기 위한 행동이었다. 잡히기 전까지 그는 시외버스 3차례, 시내버스 8차례만 탔다. 나머지는 모두 걸어서 도주했다.

하루에만 7시간을 걸었고, 은행 여자화장실에서 눈을 붙이기도 했다. 우유 한 팩으로 하루 끼니를 때우다 충남 계룡을 거쳐 논산으로 이동했다. 이 곳에서 일자리를 찾을 생각이었다.

경찰은 충북·충남 7개 도시의 CCTV를 분석하는 한편, 버스기사들에게 강씨의 사진을 공유하면서 수사망을 좁혔다. 강씨의 동선을 잡기 위해 들여다 본 CCTV·블랙박스만 1000여개가 넘었다.

마침내 논산 화지시장에서 일자리를 찾는 강씨를 CCTV에서 발견한 형사들은 현장으로 내려가 시장의 한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던 강씨를 잡았다. 치밀한 도주계획을 세웠던 강씨는 식품위생법 위반말고는 별다른 전과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씨는 범행사실을 시인하면서도 "억울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편이 자꾸 무시했어요. 만날 음식을 못하네, 머리가 나쁘네...술 마시고 울화가 터져서 그런 겁니다."
경찰은 지난 29일 강씨를 구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