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라이프가 바뀐다 ②]
'모피는 구시대적이다' 윤리적 소비 부상하며, 탈(脫) 모피 운동 확산
구찌, 베르사체 등 모피 판매 중단

’반 모피’ 시위를 벌이고 있는 동물보호단체 PETA 회원들

패션 마케터 김희원(33) 씨는 매주 주말 유기견 보호소에서 봉사 활동을 한다. 10년 넘게 키우던 반려견이 세상을 떠난 후 시작한 일은 그의 일상에 작은 변화를 가져왔다. “유기견을 돌보며 동물권에 관심 갖게 됐고, 모피도 입지 않게 됐어요. 요즘엔 중국에서 유기견이나 길고양이로 만든 모피가 수입된다고 해 모피 반대 운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모피 반대’하면 동물보호단체의 과격한 구호와 알몸 시위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엔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모피를 거부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윤리적이고 사회 친화적인 소비가 퍼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동물애호가와 채식주의자의 증가도 이런 흐름을 부추겼다. 국내 반려동물 보유 가구 비율은 2010년 17.4%에서 2015년 21.8%로 증가했다.

◇ 쿨하고 당당하다, 우린 모피가 싫어요

모피를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모피 채취 과정에서 자행되는 비인도적인 행위다. 인터넷과 SNS를 통해 모피 산업의 적나라한 현실이 퍼지면서 경각심이 커졌다. 직장인 이현진(31) 씨는 “모피 농장에서 모피를 채취하는 영상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좁은 철창에 갇혀 키워지고, 산채로 가죽을 벗기는 모습을 본 후 더 이상 모피를 입을 수도, 옹호할 수도 없게 됐다”라고 말했다.

작년 8월 패션 잡지 보그 파리판은 슈퍼모델 지젤 번천이 인조 모피를 입고 새끼 여우, 토끼 등과 함께 화보를 찍어 화제를 모았다.

직장인 배승현(35) 씨는 5년 전 채식을 시작한 후 모피와 거리를 두게 됐다. 배 씨는 육류와 조류를 먹지 않고 생선과 달걀, 우유는 먹는 페스코(Pesco) 채식인이다. 그는 “원래 고기를 좋아했지만, 고양이를 키우면서 동물권을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채식을 시작했고, 모피도 입지 않게 됐다”라고 했다.

먹고 입는 행위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 채식주의자인 영국 패션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는 모피와 가죽을 사용하지 않고, 친환경, 재활용 원단으로 옷을 만든다. 2001년 론칭 때만 해도 그의 디자인 전략에 회의적인 이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독창적인 브랜드 철학으로 인정받는다. 씨티그룹에 따르면 스텔라 매카트니는 작년에 약 2억6천만 유로(약 3321억원)의 매출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 구찌, 베르사체 등 탈(脫) 모피 운동 확산

대학원생 정지현(28) 씨는 “동물 모피는 엄마나 할머니가 입는 구시대적인 옷”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모피 재킷은 수십 년째 디자인이 같다. 어떤 매장을 가도 고상한 중년 부인이 입을 법한 올드한 디자인뿐이다. 반면, 인조 모피는 색감이 화려하고 실루엣도 세련돼 매력적이다”라고 말했다.

인조 모피를 선보인 버버리 2018 가을/겨울 패션쇼

인조 모피 기술의 발달도 탈 모피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과거 인조 모피는 뻣뻣하고 털이 송송 빠지는 저급한 수준이었지만, 이젠 진짜 모피 못지않은 품질을 자랑한다. 동물 모피와 달리 선명한 색 구현이 가능하고 디자인에 제한이 없는 것도 장점. 가격도 훨씬 저렴하다. 동물 모피의 대체품이었던 인조 모피는 가짜임을 강조한 ‘페이크 퍼(Fake Fur)에서 친환경의 의미가 들어간 에코 퍼(Eco Fur)라 불리며 독창적인 패션 소재로 인정받는다. 영국 인조 모피 전문 브랜드 쉬림프는 이런 바람을 타고 세계적인 브랜드로 부상했다. 국내에도 푸시버튼과 제인송 등이 동물 모피 대신 인조 모피를 사용한다.

최근엔 명품 업체들이 앞장서 탈 모피를 선언에 나섰다. 아르마니, 마이클 코어스, 랄프로렌 등 유명 브랜드는 물론 명품 전자상거래 업체 육스 네타포르테 그룹과 영국 셀프리지 백화점이 명품 제품을 팔지 않는다. 호사스러운 디자인으로 유명한 구찌와 베르사체도 모피 판매를 중단했다. 모피 제품으로 연간 100억여 원의 판매수익을 챙겨온 구찌가 모피를 포기한 이유는 간단하다. 고객들이 이젠 모피 제품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르웨이와 영국, 오스트리아 등 모피 생산과 판매를 중단하는 국가도 늘고 있다.

◇ 부를 과시하듯, 윤리적이고 환경친화적인 소비 확산

한편 인조 모피를 입는 것을 과시적인 소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직장인 이재현(32) 씨는 “인조 모피를 입으면 나의 윤리적인 소비 태도를 드러낼 수 있어 만족도가 크다. 더 개념 있는 사람으로 보여지는 것 같다”라고 했다.

행동경제학자 스티브 섹스턴과 앨리슨 섹스턴은 환경친화적 가치를 높게 두는 지역일수록, 타인으로부터 윤리적이고 환경친화적인 사람이란 걸 인정받기 위해 과시적인 소비 성향을 보인다고 했다. 소비를 통해 부를 과시하듯, 친환경 자동차를 타고 모피를 입지 않고, 페미니즘 구호를 담은 슬로건 티셔츠를 입는 행위 역시 윤리적인 태도를 드러내기 위한 과시적인 행동이라는 것. 동물과 환경에 대한 관심이건, 과시적인 목적이건 간에 패션계가 더 나은 미래를 향해 갈 것이라는 건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