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대 노조인 'JR히가시니혼(東日本) 노조'가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 카드를 꺼내들었다가 최근 석 달간 전체 노조원 4만7000명의 68%에 달하는 3만2000명이 탈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JR히가시니혼은 세계 4위, 일본 1위의 철도회사로, 직원 평균 연봉이 700만엔(약 7000만원) 이상이다. 일본 인구 4분의 1이 몰려 사는 수도권 통근망을 쥐고 있어, 이 회사가 파업하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벌어질 위험이 있다.

노조는 지난 2월 후생노동성에 "(원하는 만큼 임금 인상이 안 되면) 파업을 할 수 있다"며 "열차 운행시간만큼은 지키겠다"고 했다. 하지만 노조원들은 노조가 파업 카드를 꺼냈다는 사실 그 자체에 반발했다. 노사가 '5년 연속 기본급 인상'에 합의해 파업 없이 협상이 마무리됐지만 노조 탈퇴 러시는 그때부터 불붙었다.

JR히가시니혼은 원래 일본국철의 일부였다. 1987년 나카소네 정권 때, 일본 정부가 '공룡기업' 일본국철을 7개로 쪼개 민영화하면서 탄생했다. 국철 시절엔 파업을 수시로 했다. 민영화 직전 강성 노조원들이 좌익단체와 손잡고 전국 33곳의 열차 케이블을 동시에 잘라내 일본 열도가 마비되다시피 한 적도 있다.

하지만 민영화 후엔 30년 이상 한 번도 파업이 없었다. 임직원들 사이에 '노사 간에 신뢰하는 회사'라는 자부심이 자리 잡았다. 노조의 파업 카드가 바로 이 부분을 건드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JR히가시니혼 노조는 사측과 정부에 파업 가능성을 예고하면서도, 여론의 반발과 사회적 파장을 우려해 '시민에게 주는 피해는 최소화하겠다'고 방어막을 쳤다. 하지만 조합원들이 화난 건 '열차 운행시간을 지키는 파업이냐, 안 지키는 파업이냐'가 아니라 '노조가 파업 카드를 썼다'는 점 그 자체였다. 평범한 직원들 입에서 "국철 때로 돌아가자는 얘기냐" "30년간 안 한 파업을 왜 구태여 하겠다는 거냐"는 불만이 쏟아졌다. 높은 연봉을 받는 안정적인 직장의 노조가 임금 인상을 위해 파업하겠다는 것에 노조원들 스스로 반발한 것이다. 당황한 노조는 닷새 만에 파업 카드를 철회하고, 두 달 뒤에는 파업 카드를 들먹인 집행부 14명을 징계했다. 그러나 한번 시작된 노조 탈퇴 흐름을 되돌리지 못했다.

노조 집행부가 파업 얘기를 꺼낸 직후, 일본 정부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명의로 "노조 지도부에 극좌 단체 '가쿠마루(革マル)파'가 침투해 있다"는 문서를 국회에 공식 제출한 것도 조합원들이 노조 집행부에 품은 불만을 증폭시켰다.

가쿠마루파는 '일본 혁명적 공산주의자동맹 혁명적 마르크스주의파'의 줄임말이다. '적군파' '중핵파' 같은 단체들과 더불어 1960년대 과격 시위를 주도했던 그룹이다. 다른 그룹들은 1960~70년대에 "행동으로 체제를 부숴야 한다"며 각종 폭력사건을 일으키다 우르르 검거된 반면, 가쿠마루파는 이론 투쟁에 중점을 두며 여러 노조에 자기 세력을 확대했다. '같은 좌파라도 가쿠마루파의 전술에 동의하지 않으면 궤멸시켜야 한다'는 게 이들의 신념이라 좌파끼리, 때로는 자기네 단체 안에서 살인 사건도 몇 차례 났다. 일본 공산당도 "가쿠마루파 등은 우리와 아무 관계 없는 폭력단체"라고 확실히 선을 긋고 있다. 이후 학생운동이 수그러들며 기세가 꺾였지만 일본 경시청은 지금도 가쿠마루파 조직원이 전국에 5500명쯤 된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