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계에 '넷플릭스 경계령'이 떨어졌다.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 기업인 넷플릭스가 외국 영화와 방송을 국내에 소개하는 수준을 넘어, 이른바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명명한 한국 자체 제작 콘텐츠 비중을 대폭 늘리면서다. 넷플릭스는 최근 인터넷TV(IPTV) 업체 LG유플러스와 손잡고 한국 가입자 유치에 본격 나서면서 그 영향력을 더욱 확대하고 있다. 방송계 내부에선 국내 방송 산업에 '독배(毒杯)'가 될 것이란 견해와 한류 확산의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란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넷플릭스와 기존 방송사들에 대한 규제가 형평성에 맞는지 검토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방송 산업 경쟁력 훼손 우려"

넷플릭스는 지난해 영화 '옥자'에 이어 올 상반기 '유병재의 블랙 코미디' '범인은 바로 너!' 같은 자체 제작 예능 프로를 공개했다. 하반기에는 200억원을 투입한 대작 '킹덤'(8부작), 빅뱅의 승리가 출연하는 'YG전자' 등 대형 드라마까지 선보인다. 킹덤은 좀비 스릴러 사극으로 조선 왕세자가 역병의 원인을 조사하면서 나라를 위협으로부터 구해낸다는 내용. 넷플릭스는 그동안 '비밀의 숲'(tvN), '효리네민박'(jtbc) 등 국내 방송사 판권을 꾸준히 확보해왔지만, 한 걸음 더 나가 자체 예산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이는 미국 본사 글로벌 전략에 따른 것으로 넷플릭스는 올 한 해 80억달러(약 8조5500억원)를 들여 전 세계에서 약 700편의 콘텐츠를 제작할 예정이다. 아시아에서는 한국 콘텐츠를 이용해 동남아 시장을 공략하고, 향후 중국 시장을 노린다는 전략. '범인은 바로 너!'에 유재석, 이광수를 캐스팅한 것도 중국과 동남아 시청자를 노린 포석이다.

넷플릭스는 현재 1억1760만명 가입자의 절반 이상이 유럽·남미·아시아 등 미국 이외 국가 거주자로 더 이상 미국형 콘텐츠만 만들 수 없는 상황이다. 금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손오공' 같은 무(無)국적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이유다. 방송계 관계자는 "넷플릭스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시장은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이기 때문에 한국은 아시아 진출의 교두보로 사용된 뒤 결국 밀려나게 될지도 모른다"며 우려했다.

넷플릭스로 인해 '푹'이나 '옥수수' 같은 한국형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 산업이 설 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 실제로 영국에선 넷플릭스가 6년 만에 VOD(주문형 비디오)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일이 벌어졌다. 방통위 고위 관계자는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는 넷플릭스 영향으로 국내 방송 산업의 기반이 약화되면 규제를 검토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글로벌 플랫폼 가능성도 커"

마냥 경계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목소리도 높다. 이에 최근 지상파 방송사들도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공급하는 것을 전향적으로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케이블TV 인기작들이 속속 넷플릭스로 들어가는 가운데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것. 한 지상파 방송사 관계자는 "시기가 지난 구작(舊作) 드라마는 판권을 넷플릭스에 넘겨 수익을 내는 것이 어떠냐는 분위기"라고 했다.

국내 방송 제작사들이 넷플릭스를 통해 아시아 지역에서 한류로 제대로 된 수익을 낼 기회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그동안 동남아의 경우 불법 콘텐츠가 많아 한류의 명성만큼 수익을 내지 못한 탓이다. 넷플릭스의 경우,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에 공개되고 세계 25개국 언어로 자막을 붙이는 등 국내 외주 제작사들이 해외에 직접 진출하는 통로로 활용될 것이란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국내 방송 사업자들은 넷플릭스의 자본과 기술을 활용해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