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만은 되지 말자고 생각했다. 새벽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러시아워를 뚫고 출근을 하고, 점심시간만을 기다렸다 한숨 돌리고, 하루하루를 어떻게 버티며 금요일을 학수고대하고, 다시 러시아워를 뚫고 퇴근하는 삶만은 살지 말자고. 다행히 출근과 퇴근을 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출근하고 퇴근하지 않기 때문에 출근과 퇴근하는 사람들을 종종 부러워한다. 고정적인 월급과 규칙적인 삶의 패턴과 사람들과 부딪히며 생길 수밖에 없는 생의 파동을. 나 역시 출근과 퇴근을 매일같이 되풀이하는 직장인이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매일같이 출근과 퇴근하지 않는 삶을 꿈꿨다. 그런데 막상 출근과 퇴근을 하지 않게 되자 그런 삶을 부러워하는 이 아이러니란.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에도 그런 사람이 나온다. 그의 이름은 '그'다. 작가가 그의 이름을 한 번도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의 친구와 동료, 첫 번째 부인과 두 번째 부인이 낳은 딸, 동유럽 출신인 세 번째 부인의 이름까지 상세하게 나오지만 '그'의 이름은 그저 '그'다.
이 남자는 성공한 광고 아트디렉터다. 원래는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용기가 부족했고, 부양할 가족이 있었다. 은퇴한 후 뉴욕의 삶을 정리하고 내려간 은퇴자 마을 스타피시비치. 거기서 평생의 꿈이었던 그림을 그리며 은퇴자들을 위한 그림 교실을 연다. 은퇴만 하면 그림에 전력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그의 그림 교실의 수강생들도 마찬가지다. 동경의 대상이었던 그림을 그리게 되자 그림은 골칫거리가 된다. 그러자 그는 이런 말을 들려준다.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
정신이 번쩍 나게 하는 말이다. 이 소설의 역자 정영목이 옮긴이의 말에서 첫 문장으로 써서 더 유명해졌다. 한 소설의 역자의 말을 넘어서 우리가 매일 되풀이하는 일상의 숭고함을 일깨우는 좋은 에세이이기도 한 이 글을 인상 깊게 읽었다. 나는 어느 인터뷰에선가 정영목이 클래식 공연을 가장 많이 본 사람에게 주어진다는 고양아람누리의 VIP라는 사실을 본 적이 있다. 많은 편집자가 신뢰하고 또 많은 독자가 찾아 읽는 번역가인 그가 하루 치의 노동, 할당된 번역을 해치우고서 공연장에 앉아 음악을 듣는 장면을 상상해본 적이 있다. 어느 날인가 그 장면이 문득 떠올랐던 것이다. 이런 사람이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라는 말을 인용했으니 이 글이 힘을 가질 수밖에!
내가 벌써 두 번이나 인용한 그 말, 이 말은 원래 척 클로스가 했다고 필립 로스는 본문에 슬쩍 썼다. 예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 부분이었는데, 이번에 '에브리맨'을 읽다 '척 클로스' 대목에서 멈췄다. 척 클로스가 누군가? 그는 보통 사람, 그러니까 '에브리맨'의 초상을 평생 그렸던 사람이다. 유명인이나 아름다운 사람의 얼굴을 그리지 않고 평범한 보통 사람의 얼굴을 그렸다.
10년 전쯤 성곡미술관에서 척 클로스의 그 그림을 본 일이 떠올랐다. 거대한 크기의 사람의 얼굴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거대한 사람을 이루고 있는 얼굴 안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의 얼굴이 있었다. 보통 사람의 얼굴들이. 그 얼굴이 모여서, 하나의 픽셀이 되어, 거대한 사람의 얼굴이 되었던 것이다. 얼굴들로 얼굴을 만든 것이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척 클로스 회고전 기획자인 롭 스토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살로 살을 만드네?"
10년 전의 척 클로스는 내게 어떤 감흥도 주지 못했다. 그때는 그저 무심히 지나쳤다. 꽤 넓었던 전시장을 도는 데 삼십 분도 안 걸렸다. 그런데 10년이 흘러 그때 보았던 척 클로스의 얼굴이, 그 얼굴들이 되살아났다. 척 클로스는 난독증을 앓았다. 그리고 척 클로스는 척추장애도 있었다. 당시 회사 동료였고, 그전에는 큐레이터였던, 지금은 하루키 책을 많이 내는 일본어권 편집자인 J선배가 말해주었다. "아아, 네에"하고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이 말 역시 무심히 흘려버렸다. 그런데 10년이 지나 '에브리맨'을 다시 읽다가 필립 로스가 무심히 던져 놓은 '척 클로스'라는 이름에 걸려 넘어지고 만 것이다. 그러고는 척추장애를 앓으며 매일같이 보통 사람들의 얼굴에서 그들 인생의 드라마를 발견하는 것을 되풀이하고 또 되풀이했던, 그 지루하다면 지루하고, 고행이면 고행일 그 일을 하면서, 반복 속에서 영감을 찾았던 척 클로스를 생각하는 것이다.
다시 '에브리맨'으로 돌아와서. 이 소설은 공동묘지에서 행해지는 장례식으로 시작한다. 죽은 사람은 '그',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그는 세 번 결혼을 했고, 그 결혼 전후로 많은 여인의 마음과 몸을 달아오르게 했으며, 자식들을 얻었고, 광고업계에서도 성공을 이뤘다. 성공한 보통 사람의 인생을 살았다. 그랬던 그가 한 해 한 해 늙어가며, 매년 입원을 반복하며, 육체의 쇠퇴를 마주하게 된다. 그러다 어떤 수술에서 이생으로 복귀하지 못한 것이다. "그는 쓰러지는 것과는 거리가 먼, 불길한 운명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느낌으로, 다시 충만해지기를 갈망하며 밑으로 내려갔지만, 결국 다시 깨어나지 못했다. 심장마비. 그는 이제 없었다. 있음에서 풀려나,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처음부터 두려워하던 바로 그대로."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다.
이렇게 죽은 그의 장례식장에서 필립 로스는 이렇게 쓴다. "다른 여느 장례식보다 더 흥미로울 것도 덜 흥미로울 것도 없었다. 그러나 가장 가슴 아린 것, 모든 것을 압도하는 죽음이라는 현실을 한 번 더 각인시킨 것은 바로 그것이 그렇게 흔해빠졌다는 점이었다." 맞다, 흔해빠졌다. 우리의 일상, 반복되는 일상, 일상의 고통, 그건 누구나 다 겪는 것이다. 인간이라면, 보통 사람이라면. 그러다, 그렇게 살다 죽는다. 때때로 환희가 찾아오기도 하지만, 아주 잠깐이다. 일상의 고통을 견디라고 신이 창조해낸 얄궂은 선물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웃을 수밖에. 순간순간 웃게 되기를 바랄 수밖에. 말년의 '그'는 죽은 상사의 부인과 전화를 하며 인생의 어느 한때를 회상한다. 그녀가 그의 딸에게 냇 킹 콜의 '스마일'이라는 노래를 가르쳐주던 오후에 대해. "웃어요, 마음이 아프더라도. 웃어요, 가슴이 무너질 때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