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희 가수

도대체 잘 죽는다는 게 뭘까. 잘 살았다는 전제가 없다면 잘 죽는 것의 의미도 없을 것이다. 나이 일흔이 되어보니 죽음의 공포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죽음의 공포를 처음 느낀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프랑켄슈타인과 드라큘라 영화를 보고 후유증에 시달렸다. 내가 자던 다락방에서 피, 해골, 송장이 무서운 귀신과 함께 한밤중 꼬마의 가슴을 공포에 떨게 했다.

이런 공포는 죽음에 대한 어설픈 성찰로 이어졌다. '태어난 우리는 언젠가 모두 죽는다'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죽으면 태어나기 전과 같은 곳으로 돌아간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고 아무것도 의식할 수 없는 완전한 무(無)로 환원되는 것이다. 나는 그때 인생이 허망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열한 살 꼬마는 다락방에서 홀로 절망했다. 이 절망을 호소할 수 있는 대상도 없었다. 속수무책이었다.

절망의 수렁에서 도대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무엇을 해본다 한들 나아질 것도 없는 이 절망에서, 어찌 살든 삶은 허망한 것이라는 결론 앞에서 과연 무슨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때 난 '내가 원하는 대로 살자. 누가 좋다고 시킨다고 하는 게 아니라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다. 남이 좋다고 권하는 대로 생을 살다 잘못되면 그야말로 손해 중의 손해 아닌가. 원하는 삶을 살다 후회할 일이 생겨도 내가 한 결정이니 덜 억울할 것이란 생각을, 그 어린 나이에 했다. 이 생각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전반에 걸쳐 변하지 않았다.

어머님이 울면서 반대하시던 대학 중퇴도, 그 누구보다 일찍 노래를 그만둔 것도, 옷 장사를 시작한 것도 내 생각대로 결정했다. 미국에서 살겠다는 것도, 너무도 잘나가던 방송국을 그만둔다는 결정도, 울릉도에서 살겠다는 결심도 같은 맥락으로 한 것이었다. 아직까지 후회는 없다.

얼마 전부터 나는 주변 정리를 하고 있다. 입지 않는 옷, 잡다한 수집품, 읽지 않은 책, 수많은 사진들, 나 죽으면 한꺼번에 버려질 것들이다. 울릉도 나의 뜰 안의 울릉천국 극장 부지를 기증했지만, 나머지도 늦지 않게 사회에 환원할 것이다. 잠시의 흐릿함과 게으름으로 훗날 후회하게 될 일을 만들고 싶지 않다. 다만 가능하다면 울릉천국에 묻히고 싶다. 가까운 사람들과 내가 좋아하는 와인을 유쾌하게 마시고 잠들어 깨지 않는 것, 그것이 나의 이상적인 죽음이다. 그도 저도 죽은 자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마는. 울릉도에 봄이 한창이다.


명사들이 쓰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나 떠나는 날엔'을 매주 금요일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