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빅리그에 데뷔해 선수와 감독으로 50년이란 긴 세월을 보냈던 더스티 베이커(69) 전 워싱턴 내셔널스 감독은 최근 "메이저리그에서 과거에 인종차별이 어느 정도 있었다면 요즘은 연령과 임금 그리고 지적 (intellectual) 차별이 있다"는 말을 했다. 메이저리그 야구단 운영에서 고학력 단장들의 지식이 경험보다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취지였다.
베이커 전 감독의 말처럼 최근 메이저리그는 '가방끈'이 득세하는 시대다. 30개 구단 중 절반에 가까운 13개 팀 단장이 '아이비리그'(미 동부 명문 사립대를 통칭하는 말) 출신이다.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하버드대가 5명으로 가장 많았다. 코넬(3명)과 프린스턴·다트머스(이상 각 2명)가 그 뒤를 이었다. 나머지 단장들도 대부분 4년제 대학을 나왔다.
1980~90년대 아이비리그 출신 MLB 단장은 당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이끌었던 샌디 앨더슨(71·1983~1997년) 현 뉴욕 메츠 단장 한 명뿐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말엔 4명으로 늘었고, 2016년부터 두 자릿수를 넘겼다. 이 중 메이저리그에서 선수로 뛴 단장은 시애틀 매리너스의 제리 디포토 한 명뿐이다. 아예 고교나 대학 선수 경험조차 없는 단장도 12명이나 된다.
고학력 단장 러시가 시작된 것은 빌리 빈(56) 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부사장이 데이터를 토대로 뽑아낸 다양한 통계와 확률을 기반으로 전략을 짜는 '세이버 매트릭스'를 통해 약팀을 강팀으로 변모시킨 다음부터이다. 빌리 빈의 '머니볼'에 관심을 갖게 된 각 구단이 숫자와 데이터를 활용할 능력을 지닌 단장과 프런트를 선호하게 됐다.
고학력 단장들은 이미 큰 성과를 내고 있다. 1995년 예일대를 졸업한 뒤 2003년 당시 30세의 나이로 보스턴 레드삭스 단장이 된 테오 엡스타인(45) 현 시카고 컵스 사장은 '저주 브레이커'로 불린다. 2004년 '밤비노의 저주'를 깨고 레드삭스에 86년 만의 우승을 안겼고, 지난 2016년엔 컵스로 옮겨 '염소의 저주'를 깨고 108년 만의 우승컵을 만들어냈다.
지난해 월드시리즈에서 처음으로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은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단장과 감독이 모두 고학력자이다. 제프 루나우(52) 단장은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제학·공학 복수 전공을 마치고, 시카고 노스웨스턴대에서 MBA 학위를 땄다. 그가 2014년 감독으로 선임한 A J 힌치(44) 감독은 스탠퍼드대를 나왔다. 둘은 리그 최약체였던 팀을 3년 만에 최강으로 이끌었다. 지난해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10개 팀 중 6개 팀 단장이 아이비리그 출신이라는 점을 우연으로만 볼 수 없다.
고학력 단장들은 세이버 매트릭스를 이해하고 활용할 줄 아는 젊고 똑똑한 감독을 선호한다. 올 시즌을 앞두고 교체된 감독은 6명이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론 가든하이어(61) 감독을 제외하면 나머지 5팀이 모두 40대 감독들이다. 베이커 전 감독처럼 경험과 노하우를 앞세운 레전드 선수 출신 야구인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한국 프로야구는 얼마 전만 해도 모기업 임원이 단장직을 맡았으나 점점 선수 출신 단장이 늘어나 현재 10개 팀 중 7개 팀이 선수 출신이다. 이 중엔 감독 출신도 3명이나 된다.
국내 한 야구인은 "메이저리그 단장들은 선수 경험만 부족할 뿐 스카우트와 전력 분석 경험을 쌓으며 야구에 대한 이해도가 선수 출신 못지않다"며 "국내에선 현재까지 선수 출신 단장 평가가 전반적으로 좋지만, 메이저리그처럼 야구 지식과 통계로 중무장한 비(非)야구인 단장 시대가 오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