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아주, 국내 최초로 AI 변호사 '유렉스' 도입
"하루 걸리던 의뢰인 상담 준비…2~3분이면 끝"
아직은 '검색 도우미' 수준, 학습자료 확보가 숙제

“뺑소니 사고를 냈어요. 저는 무슨 죄인가요?”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법무법인 대륙아주. 회의실 한켠에 마련된 43인치 대형 모니터 화면에 인공지능(AI) 변호사 ‘유렉스(U-LEX)’가 떠있었다. 유렉스에 ‘대화체 그대로’ 검색했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도주차량)’ 등 관련된 판례 100여건이 화면에 떴다. 형사 85건, 민사 12건, 헌법재판소 결정 2건 등이다. 오른편에는 관련 법령인 형법,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도로교통법,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등이 그물망처럼 떴다.

AI의 시대다. 법률 시장에도 ‘AI 변호사’가 등장했다. 대륙아주는 올해 초 국내 로펌 가운데 처음으로 AI 변호사인 유렉스를 도입했다. 상용화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검색기’ 수준이다. 다만 판례 검색 등 단순 업무에서는 인간 변호사들의 ‘비서’ 역할을 한다는 게 대륙아주 구성원들의 설명이다. 이전에는 현실에서 일어난 사건과 들어맞는 법률 용어를 파악하는 데만도 적잖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이 시간이 크게 줄었다는 평가다.

서울 역삼동에 위치한 법무법인 대륙아주의 인공지능(AI) 변호사 ‘유렉스’.

◇ 유렉스 직접 써보니… 온라인 게임 '스타크래프트' 맵핵 같아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인 스타크래프트에는 '맵핵(map hack)'이 있죠? 이 친구만 옆에 있으면 맵핵을 쓰는 기분이예요." 맵핵은 가려진 지도를 밝혀주는 프로그램이다. 상대방이 어떤 전략을 구사하는 지 알 수 있어 게임을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다.

대륙아주 ‘리걸 프런티어팀’ 소속 김형우(38·연수원 39기) 변호사는 유렉스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리걸 프런티어팀은 대륙아주 내 법률 AI 시스템 개발 등을 담당하는 부서다.

유렉스는 변호사들이 어떤 법조항과 판례를 중점적으로 확인해야 할 지 알려주는 역할을 맡았다. 특징은 ‘자연어 처리’다. 일상 언어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관련 법률 용어를 찾아 키워드 검색을 한다.

법무법인 대륙아주의 인공지능(AI) 변호사 유렉스는 일상 언어를 자동으로 법률 용어로 이해해 정보를 처리한다. 예를 들어 ‘물컵을 던진 경우’를 찾으면 돌이나 열쇠뭉치 등을 던진 사례를 찾아 이에 해당하는 폭행죄 판례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뺑소니 사고’를 검색하면 유렉스가 ‘도주차량’으로 이해해 관련 판례와 법령을 찾아준다. ‘사람에게 물컵을 던지면 어떤 죄로 처벌되나요’라고 물어보는 경우도 비슷하다. 물컵을 ‘위험한 물건’으로 인식하고 돌이나 열쇠뭉치를 던진 경우의 판례를 보여준다.

가장 큰 장점은 시간 단축이다. 김 변호사는 “변호사라고 해서 모든 법을 다 꿰고 있는 건 아니다”라며 “의뢰인이 막연한 얘기를 하면 키워드 위주로 구글에 검색하거나 각종 법서를 뒤져보고 판례를 찾아보다 하루가 다 가버린다”고 했다. 이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고객들에게 신뢰를 줄 수 없고, 이는 변호사에게 치명적”이라면서도 “유렉스에 검색하면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을 추려 법령과 판결문을 한 눈에 보여준다. 빠르면 2~3분만에 의뢰인을 맞을 준비가 끝난다”고 했다.

방대한 데이터를 찾을 수 있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같은팀 김동현(36·변호사시험 4회) 변호사는 “유렉스는 민사, 형사뿐만 아니라 가사, 특허, 행정, 헌법 등 모든 법 조문을 살펴보기 때문에 무심코 넘어갈 수 있는 부분도 하나 하나 챙겨주는 친절한 조력자”라고 했다.

법무법인 대륙아주의 인공지능(AI) 변호사 ‘유렉스’. 오른편에는 사진과 같이 검색에 따른 관련 법령들이 그물망처럼 뜬다.

◇ '머신러닝'으로 스스로 학습…혼자 시행착오 겪으며 정확도 높여가
AI인 유렉스는 시간이 갈수록 똑똑해진다. AI의 특징인 머신러닝을 기반으로 시스템이 구축됐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자료를 수집하고 결론에 도달한다. 이 과정에서 겪는 시행착오를 스스로 학습하며 실수를 줄인다. 이번보다 다음 번에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고, 그 다음 번에는 더 빠르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 김형우 변호사는 "유렉스는 대륙아주에서 키우는 법조인 '유망주'라고 보면 된다"며 "지금 유렉스의 수준이 어린아이라면, 앞으로는 더욱 똑똑해질 것"이라고 했다.

유망주는 또 있다. 변호사를 타깃으로 삼은 게 유렉스고, 법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만든 ‘QA머신’과 ‘법률챗봇 로보(Lawbo)’다. 이들은 사람처럼 질문 상대와 대화를 주고받는다. 해법을 찾기 위해 질문자에게 역(逆) 질문을 던지는 경우도 있다.

아직은 기초적 단계다. 찾는 빈도가 적은 케이스를 검색하면 정확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최근 논란이 된 ‘드루킹 일당 댓글 조작’ 사건과 관련해 “프로그램을 이용해 포털 댓글을 조작한 경우”를 검색했다. 결과는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 위반, 프로그램 저작권 침해 금지 가처분 등이었다. 드루킹 일당은 네이버 댓글 순위 선정 업무를 방해한 혐의인 ‘업무방해죄’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AI 변호사’가 학습할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것도 넘어야 할 산이다.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영국과 달리 하급심 판결문이 제한적으로 공개돼 자료를 수집하기가 쉽지 않다. 김동현 변호사는 “아직 기초적인 수준이지만 시스템이 갖춰지면 ‘법률 비서’를 구현하는 건 시간 문제”라며 “변호사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맞춤형 답변을 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했다.

AI인 유렉스는 마치 사람처럼 하루하루 성장하고 있다. AI의 특징인 머신러닝을 기반으로 시스템이 구축됐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자료를 수집하고 결론에 도달한다.

AI 변호사의 등장은 전세계적 추세다. 미국의 대형 로펌 ‘베이커 앤드 호스테틀러’는 지난 2016년 세계 최초로 AI 변호사 로스(Ross)를 도입했다. 로스 도입 이후 변호사들의 법률·판례 검색 시간이 20% 가량 줄었다는 게 통계적으로 입증되자 다른 로펌들도 연달아 로스를 ‘구성원’으로 받아들였다.

일각에서는 AI가 변호사 시장을 대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유엔 미래보고서 2045’를 보면 변호사는 30년 후 AI로 대체될 위험이 큰 직업군 중 하나다. 이에 대해 김대희(56·연수원 18기) 대륙아주 대표변호사는 “미국이나 중국에서는 몇년 전부터 법률 AI를 개발해 도입했다”며 “이같은 추세를 거스를 수 없다면 변호사의 일자리를 빼앗는 기술로 대하기보다는 활용 노하우를 발전시키는 것이 낫다”고 했다. AI 변호사를 인간 변호사의 경쟁자가 아닌 동반자로 인식해야 한다는 이야기다.